(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1859년 찰스 다윈이 <종의 기원>을 세상에 내놓았을 때, 과학계조차 그 낯선 패러다임을 온전히 받아들이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다. 오늘날 생명과학의 눈부신 발전과 함께 진화론은 주류 과학의 확고한 기초가 되었지만, 한국 교회를 비롯한 신학계의 풍경은 19세기의 당혹감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듯하다. 불과 1~2년 전 ‘유신진화론’을 지지한다는 이유로 신학 전공 교수가 교단 신학교 강단에서 해임되었다가 교원 소청을 통해 복직되었다. 얼마 전에는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총회가 ‘유신진화론’을 이단으로 규정하면서 신학계와 교계 안팎은 들썩이기도 하였다. 이러한 소란은 진화론을 무신론으로 여기는 오랜 두려움이 빚어낸 결과다.
그러나 과학의 성과를 신학의 언어로 담아내려는 ‘유신진화론’을 향한 매서운 비판들을 찬찬히 뜯어보면, 그 바탕에는 짙은 오해가 깔려 있다. 흔히들 ‘유신진화론’이 기적을 부정하는 자연주의에 굴복했다거나 하나님을 세상 밖으로 밀어낸 차가운 이신론이라고 지적한다. 하지만 이 진영의 학자들이 십수 년간 치열하게 전개해 온 신학적 성찰의 깊이를 마주하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이들은 도리어 현대 과학의 지평 위에서 기독교의 창조 신앙을 더욱 풍성하고 역동적으로 변호해 내고 있기 때문이다.
과학과 신학, 두 권의 책이 가리키는 하나의 진리
‘유신진화론’을 옹호하는 학자들은 138억 년이라는 장구한 우주의 시간, 유전변이와 자연선택, 그리고 모든 현생 종이 공통 조상에서 갈라져 나왔다는 현대 과학의 핵심 데이터들을 겸허하게 수용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신앙을 버리고 과학주의에 투항한 것은 결코 아니다. 이들의 밑바탕에는 하나님이 주신 ‘자연의 책(과학)’과 ‘계시의 책(성서)’이 결코 서로 모순될 수 없다는 진리정합설적 확신이 굳건히 자리 잡고 있다. 다시 말해, 자연과학을 통해 드러나는 실재에 대한 진리에 가까운 지식과(과학적 지식은 반증 가능하지만 그 지식은 축적 가능하다는 전제하에), 성서를 통해 드러나는 진리에 가까운 지식(성서는 항상 해석을 필연적으로 요청함으로써 그 지식과 이해가 창출되기 때문에)은 정합적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자연과학이 다루는 자연과 세계의 창조주가 하나님이기 때문이며 성서는 하나님이 사람을 통해 기록하신 당신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바 유신진화론자들은 자연의 합법칙성을 가능케 하신 하나님이 세계 내에서 당신의 창조 사역을 이뤄가실 때 그 합법칙성을 위배하고 행위하신다고 보지 않는다. 도리어 그분은 우주와 생명의 진화라는 장구한 자연 과정 ‘안에서’, 그 과정을 ‘통해’, 그리고 피조물과 ‘함께’ 당신의 뜻을 아름답게 실현해 가신다고 고백한다.
창조 기사는 과학 교과서가 아닌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신앙고백이다
이러한 고백은 성서의 창조 이야기를 문자적으로만 해석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을 기반으로 한다. 물론, 성서 안에는 문자적으로 해석해야만 하는 층위와 사건이 있다. 예를 들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그러하다. 그러나 창조 이야기는 그렇지 않다. 기독교 신앙의 핵심 명제, 곧 “하나님이 창조하신다”는 포기할 수 없지만 “하나님이 (~~~)의 방법으로 창조하신다”라는 보조 가설 내 구체적인 방법은 자연과학과 대화하며 언제든지 수정이 가능하다.
성서 안에는 창세기뿐만 아니라 시편과 잠언과 같은 시가서와 지혜서, 예언서에 하나님 창조에 대한 기록이 허다하다. 그리고 각 기록은 그 당시 기자들의 상황을 고려하여 하나님께서 상황에 맞게 주신 말씀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1장 10절을 기록하면서 시편 102편 25절을 인용하는데, 두 본문 모두 하나님께서 하늘을 손으로 지으셨다고 기록한다. 문자적으로만 보면, 창세기의 말씀을 통한 창조와 모순되는 기록이다. 그러나 시편과 히브리서 기자들에게 이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들에게 있어 창조 신앙의 핵심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세상을 창조하셨는가가 아니라 우리가 만난 하나님, 부인할 수 없는 계시적 경험과 부활 사건 가운데 알게 된 우리의 그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만드신 창조주라는 고백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그렇다면, 자연과학과 기독교 신앙의 대화를 통해 하나님의 창조에 대한 신학적 이해를 구성하는 ‘유신진화론’은 창조 신앙의 위기나 후퇴가 아니다. 그것은 자연이라는 장엄한 무대 위에서 지금 이 순간에도 피조물과 함께 일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계속적 창조를 찬양하도록 이끄는 이 시대의 소중한 신학적 자산이다. ‘유신진화론’이라는 이름이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한다면 다른 용어를 사용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그리스도인으로서 기독교 신앙이 자연과학과 끊임없이 대화해야 한다는 ‘유신진화론’의 정신만은 기억했으면 좋겠다. 이는 존경받는 교부인 아우구스티누스도 이야기했던 바이기도 하다.***
* Wildman, Wesley. “The Divine Action Project, 1988-2003.” Theology and Science 2, no. 1, 2004. 31-75.
** 이상목. “신약의 창조 이해.” 손호현 편집. 『창조론과 창조신학』. 서울: 동연, 2026. 35–62.
*** Augustine. The Literal Meaning of Genesis. Trans. John Hammond Taylor, S. J. New York: Newman Press, 1982. 4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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