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예수를 그리스도와 창조주로 고백하는 우리는 창세기 1, 2장을 읽으며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음을 배운다. 그러나 성서는 하나님이 만물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과학적 설명을 주지 않는다. 누가, 왜 만물을 창조했는지는 신앙의 영역에서 다루지만, 지구의 연대나 생물의 진화는 과학의 영역이다. 신앙과 과학의 범주를 구분하지 못하는 과학주의자들은 과학이 무신론을 증명한다고 주장하고, 반대편 극단에서 창조과학자들은 창세기 1장에 의해 빅뱅우주론, 지질학, 생물진화론이 틀렸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종교개혁자 칼뱅은 성경이 일반인의 눈높이 맞춰 기록되었다고 말한다. 평평한 지구, 해와 달과 별들이 담긴 궁창, 그 위에 하나님의 거처가 있는 지구 중심의 좁은 창조계를 상식으로 알았던 고대 근동인들이 이해할 수 있게 창세기가 쓰였다. 그래서 창세기에는 우주 팽창이나 지구의 공전, 지구의 연대나 생물의 진화가 담겨있지 않다. 칼뱅은 천문학을 배우려면 성경 이외에 다른 곳에서 답을 찾으라고 권한다. 이것이 칼뱅이 말하는 ‘적응론’(Accommodation)의 핵심이다.
현대 과학은 어떤 철학적 목적으로 창조세계를 탐구하지 않는다. 과학자들은 우주의 인과관계를 찾아내고 자연의 역사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며 우주의 형성 과정과 지구의 나이를 알아냈으며 생물의 진화 과정을 밝혀왔다. 성서가 기록된 고대의 근동인들은 당대의 상식을 바탕으로 하나님이 ‘만물을 즉각적으로 완성된 형태로 창조’(creatio de novo)라는 개념을 가졌지만,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이 긴 연대를 거쳐 자연법칙을 통한 ‘만물 하나하나의 연속적 창조’(creatio continua)라는 동적 개념을 갖고 있다.
여전히 고대 근동 세계관에 갇힌 사람들도 많다. 6일 창조를 과학적 설명으로 오독하여 ‘젊은지구론’을 주장하거나, 지구의 태고성은 인정하지만 생물 진화는 부정하는 ‘오랜지구론’을 주장하기도 한다. 창세기 1장의 하루는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는 지구의 하루를 의미한 것으로 보아야 하지만, 그 의미를 바탕으로 창세기 1장의 내용을 과학적 설명으로 받아들이면 문자주의에 빠진다. 성경에서 과학의 답을 찾지 말라는 칼뱅의 경고를 다시 떠올려야 한다.
과학자들은 시간적 과정을 거쳐 유의미한 변화가 있을 때 진화라고 표현한다. 우주, 지구, 생물의 진화는 신을 배제하거나 창조의 목적이나 계획을 제거하는 개념이 아니라, ‘어떻게’에 대한 답변이다. 그 답변은 ‘누가’, ‘왜’라는 신학적 질문과는 아예 범주가 다르다.
그렇다면 과학이 다루는 진화를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봐야 할까? 창조의 방법으로 이해할 수 있다. 과학의 범주인 우주와 생명의 진화 과정을, 신앙의 범주에서 하나님의 섭리도 이해하는 관점이 바로 ‘유신진화’(theistic evolution)다. 진화가 신 없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창조주의 창조 방법으로 진화를 이해한다는 뜻이다. 생물 진화를 넘어 모든 과학을 그리스도인들이 받아들일 때 같은 관점이 적용된다. 과학은 사계절의 변화를 태양과 행성들의 중력으로 설명한다. 이런 과학의 답변은 고대 근동의 상식과 어긋나지만 우리는 중력을 반대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중력을 사용한다고 해서 ‘유신 중력’이라는 부르지도 않는다. 하늘의 움직임을 중력으로 밝혔으니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며 무신론이 성행하지도 않는다. 반면, 진화의 경우는 다르다. 과학으로 진화가 입증되었으니 기독교는 퇴출되어야 한다는 무신론의 주장이 만만치 않으며, 진화가 무신론과 동치라는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 그리스도인 과학자들은 ‘무신진화’(atheistic evolution) 대신 ‘유신진화’라는 말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 표현은 ‘진화-창조’ 논쟁의 역사적 배경에서 이해해야 한다.
하지만 기독교 내부에서 논할 때는 ‘진화적 창조’라는 표현이 낫다. 창조를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창조의 방법에 대해서는 다른 입장을 가질 수 있다. 하나님이 진화를 사용하셨다고 보는 ‘진화적 창조’, 진화를 사용하지 않았다고 보는 ‘직접적 창조’ 등 다양한 수식어를 붙일 수 있다. 과학이 하나님의 창조 역사를 밝히는 도구라고 보는 나와 같은 과학자들은 하나님이 자연 세계에 부여하신 자연법칙, 인과관계, 우발성 등을 사용하고 섭리하신다고 믿는다. 이 관점이 바로 ‘진화적 창조’이다. ‘진화적 창조’를 수용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원죄론이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진화적 창조’를 거부한다면, 정자와 난자가 수정되어 단세포부터 약 열 달을 거쳐 태어나는 발생 과학은 수용해도 괜찮을까? 이 경우 원죄는 어떻게 설명할까? 부모의 DNA를 통해 생물학적으로 유전된다고 보는가? 수정과 발생을 사용하여 하나님이 나를 창조하셨다고 믿는다면, 진화를 사용하여 하나님이 인류를 창조하셨다고 믿는 일은 왜 허락되지 않는가? 발생을 통한 인간의 창조가 원죄론을 부정하지 않는다면, ‘진화적 창조’를 통한 아담의 창조는 어떻게 원죄론을 부정할 수 있을까?
하나님은 진화를 사용하지 못하는 무능한 분일까, 아니면 신학적 이해가 부족한 우리가 무능한 것일까?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게 된 죄의 상태를 믿는 것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다. 이 믿음에 과학적 설명은 불가능하다. 과학적 설명이 불가능한 원죄론 때문에 과학적 설명인 진화를 수용할 수 없다는 주장은 근원적 한계를 갖는다. 신학적 어려움 때문에 과학을 반대하는 일은 어리석다. 고대 근동의 세계관에 하나님을 가둘 수는 없다. 하나님을 자연법칙과 진화를 사용할 수 없는 무능한 신으로 제한하면,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한 신이라고 부르며 경배하던 출애굽 히브리인들의 오류를 답습하는 셈이다. AI 시대에 과학에 대한 접근성은 훨씬 높아지고 있다. 문자주의에 빠진 교회에서 자라는 청소년들은 학교에서 과학을 배우면서 창조 신앙을 거부하게 된다. 고대 근동인들이 파악한 수준으로 창조주를 제한하면, 어떻게 과학을 품고 넘어서는 창조 신앙이 가능할까? 과학적 발견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신학은 그동안 우리가 하나님의 창조를 제대로 이해해 왔는지 끊임없이 되돌아보고 창조에 대한 이해를 완성해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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