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한국교회 복음주의 진영 안에는 ‘성경의 절대적 진리성’을 함께 고백하면서도, 특히 진화론, 우주론, 지질학에 대한 해석 방식의 입장에 따라 여러 유형의 창조 담론이 공존하고 있다. 즉, ‘젊은 지구론’, ‘오래된 지구론’, ‘유신 진화론’, ‘지적설계론’ 등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따라서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창조론’이라고 하면 곧바로 논쟁이나 갈등을 떠올리고, 또 많은 그리스도인이 이 다양한 창조 담론의 공통점과 차이점은 무엇인지 묻는다. <신앙과 삶>(7+8월호)에서는 평생 창조론을 연구해 오신 한국교회의 대표적 시니어 전문가 양승훈 총장님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 혜안과 지혜를 얻고자 한다]
인터뷰어 : 석종준(서울대 기독학생 북클럽 지도목사)
일시 : 2026년 5월 22일(금) 오후 3시
장소 : 서울시 성북구 화랑로 48길 16
석종준 : 총장님께서는 한국교회 복음주의 진영 안의 창조 담론을 어떻게 바라보시는지요? ‘젊은 지구론’, ‘오래된 지구론’, ‘유신 진화론’, ‘지적설계론’ 같은 다양한 입장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양승훈 : 저는 한국교회 안에 여러 창조 담론이 공존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봅니다. 보완적인 측면도 있기 때문입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이른바 ‘창조과학’은 아무래도 성경의 절대적 권위와 영감성을 더 강조하고 있고, ‘오래된 지구론’은 성경의 영감성과 더불어 과학적 사실도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보지요. ‘유신 진화론’은 과학적 사실을 더 존중하고 강조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지적설계론’은 초월적 설계자를 가정한다는 점에서 유신론자라면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이론이라 생각됩니다. 각 이론은 강조하는 바가 다르지만 서로 배울 것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석종준 : 이 공존하는 여러 창조 담론이 공통으로 붙들고 있는 신앙고백은 무엇이고, 동시에 갈라지는 지점은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양승훈 : 공통으로 붙들고 있는 핵심적인 신앙고백은 하나님의 존재와 성경의 진리성에 대한 확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담론들이 갈라지는 가장 핵심적인 지점은 성경의 진리성의 실체가 무엇인지에 대한 입장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이론이 성경의 영감성을 인정하지만 성경이 현대 과학의 사실들에까지 교과서가 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입장이 다르지요. 구체적으로 김영길 박사님은 이재만의 <창조과학 콘서트>라는 책을 추천하면서 “성경은 진정한 과학 교과서다!”라고 했는데, 이는 창조과학자들의 성경관을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이론들은 성경을 구원에 관한 한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계시로 보지만, 과학이나 다른 학문적 영역에서는 성경이 기록되던 시대의 문화적 측면이 반영되고 있음을 동시에 인정합니다.
석종준 : 총장님은 “성경은 진리이지만 과학책은 아니다”라고 하시는 것 같은데요, 조금 더 자세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양승훈 : 우리가 아는 것처럼 성경은 주전 1500년 전부터 주후 100까지, 약 1600년 동안 기록된 책입니다. 그리고 1차 독자는 성경이 기록되던 시기의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당시의 언어와 논리로 말하지 않았다면 성경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물론 성경에는 현대 과학적인 측면에서도 의미가 있는 언급들이 많고, 어떤 개념들은 오늘날까지도 놀라운 영감을 주는 표현들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현대의 물리적 세계에 대한 인간의 이해 정도는 성경이 기록되던 시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확장되었습니다. 따라서 “성경은 진리이지만 과학책은 아니다”라는 표현은 성경의 영감성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이 우리에게 주어진 목적을 말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과학을 연구하는 사람의 태도나 자세, 윤리에 대해서는 오늘날 현대인들에게 주는 놀라운 혜안들이 많지만, 성경이 물리적 세계에 관한 현대과학적 표현을 담고 있다고 본다면 자칫 성경이 기록된 목적을 오해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천동설, 평면지구설 등은 성경의 문자적 표현에 대한 과도한 확신에 근거하고 있는 오류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석종준 : 어떤 이들은 과학이 발전할수록 창조 신앙은 위축된다고 생각하고, 어떤 이들은 과학이 창조의 신비를 더 깊이 드러낸다고 말하고 있는데요.
양승훈 : 저는 성경이 가르치는 바른 연구의 태도, 자세, 윤리의 기초 위에서 과학의 발전은 하나님의 창조 신비를 더 깊이 드러낸다고 봅니다. 한 예로 1990년에 NASA에서 ‘허블 우주망원경’(Hubble Space Telescope)을 쏘아 올리고 그것이 촬영한 영상이 본격적으로 발표되기 시작했을 때, 우리는 허블 이전의 우주에 대한 이해로부터 더 도약을 했습니다. 하지만 2021년에 NASA에서 쏘아 올린 ‘제임스웹 우주망원경’(James Webb Space Telescope)이 촬영한 영상들이 발표되기 시작하면서 인류는 또 한 번의 우주에 대한 이해의 도약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저는 현대 천문학의 발전을 보면서, 특히 망원경의 발전을 보면서 우주의 광대함과 신비에 놀랍니다. 이 광대하고도 정교한 우주를 알면 알수록 누군가가 이 우주를 지었다는 결론에 이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저는 과학을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아무런 제어 없이 풀어놓아야 한다는 주장에도 반대합니다. “모든 연구는 선하다”라고 말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특히 생명체의 발생, 특히 인간의 발생 과정에 관한 연구는 매우 조심해야 합니다.
석종준 : 한국교회 복음주의 진영 내의 창조론 논쟁은 때때로 ‘정통 대 비정통’의 문제처럼 다뤄지기도 합니다. 복음주의 진영 내부의 건강한 토론을 위해 가장 필요한 태도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양승훈 : 1981년, 한국에서 ‘창조과학’ 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후 지난 45년 동안 창조론 논쟁이 일반인들에게 때로 ‘정통 대 비정통’의 문제처럼 다뤄진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게 잘못 받아들여진 데는 저도 일조했음을 고백합니다. 이 자리에서 저로 인해 상처를 받은 분들이 있다면 사과드립니다. 왜냐하면 제가 ‘젊은 지구론’, 즉 ‘창조과학’의 입장에서 ‘오래된 지구론’으로 돌아선 후에 마음에 간직하고 있는 성경 말씀이 하나 있는데요. 바로 에베소서 4장 15절입니다.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이는 ‘참된 것’, 즉 ‘진리’(truth)를 말할 때 ‘사랑 안에서’(in love) 말하는 것입니다. 저는 아무리 진리를 말한다고 주장해도 사랑으로 혹은 사랑 안에서 말하지 않는 것은 진리를 말하지 않는 것보다 못할 수도 있다는 뜻으로 이 말씀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석종준 : 총장님께서는 오랜 시간 과학자이자 기독교 세계관 운동가로 활동해 오셨습니다. 실제로 현장에서 느끼신 한국교회의 창조 담론의 강점과 한계는 무엇입니까?
양승훈 : 한국인들은 열정이 강한 민족입니다. 저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여러 나라에서 일하면서 한국인들의 열정이 얼마나 대단한가를 새삼 느끼게 됩니다. 저는 이러한 한국인들의 열정이 창조론 연구에서도 꽃을 피우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그 열정 때문에 때때로 다투기도 하고 분열하기도 하지만 이제는 그런 에너지를 창조론 연구를 위한 지적 분투에 쏟을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그렇게 함에 있어서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은 바로 겸손입니다. 어떤 분야에서라도 겸손하지 않으면 배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현재 근무하는 에스와티니 기독의과대학교(Eswatini Medical Christian University)를 은퇴한 후에는 창조론 연구와 저술 작업으로 남은 생애를 보낼 생각을 하고 있는데요. 어쩌면 그것이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이 땅에서의 마지막 사명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데 있어서 저에게도 가장 큰 두려움은 지적 겸손함을 잃어버리지 않을까 하는 점입니다.
석종준 : 같은 성경을 진리로 함께 붙들고 있는 서로 다른 창조 담론을 가진 신학자와 과학자들이 대화할 때, 서로 생산적 만남이 되기 위하여 지켜야 할 최소한의 조건, 공통 기반 같은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양승훈 : 첫째, 지적 잠정성입니다. “나는 절대 틀릴 수 없다”라는 경직되고 교만한 태도는 그 자체가 비기독교적입니다. 기독교 진리의 핵심에 해당하는 구원론적 진리는 타협할 수 없지만, 과학적 해석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음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입니다. 자신의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특정한 주장이나 입장을 지지할 수는 있지만 그런 중에서도 우리는 나도 틀릴 수 있다는 잠정적 태도를 갖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럴 때 생산적인 토론이 이루어지고 우리는 서로로부터 배울 수 있습니다. 둘째, 자신과 다른 입장의 사람이라고 해도 그들의 신앙적 진정성을 의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유신 진화론’을 찬성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는 유신 진화론자들의 신앙적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젊은 지구론’, 즉 ‘창조과학’도 찬성하지 않습니다. 제가 찬성하지 않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산더미처럼 축적된 과학적 데이터 때문이고, 이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태도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들의 신앙적 진정성은 의심하지 않습니다.
석종준 : 오늘날 AI 기술의 급속한 발전은 인간 의식, 창의성, 생명의 기원 같은 문제들에 대한 새로운 이해 가능성이 모색되고 있습니다. 창조론에도 어떤 도전과 변화가 있겠는지요?
양승훈 : AI 기술이 가져올 변화를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을 텐데요. 저는 그리스도인들이 생명의 기원, 우주의 기원, 인간의 기원, 인간 의식의 기원 등에 대한 연구 결과들을 전문가들의 의견에만 기대지 말고 AI를 활용해서도 직접 공부하는 것을 권합니다. 창조 담론에 대한 도전들에 대해서도 전문가들의 권위에 주눅들지 말고 직접 찾아보고 공부하는 것을 권합니다. AI 시대의 가장 큰 도전은 우리 손에 쥐어진 엄청난 지식의 도구를 활용하지 않는 것입니다. 지금은 지적 성실함이 몇몇 전문가들에게만 요구되는 덕목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요구되는 시대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AI를 통해 얻는 내용은 새로운 진리의 발견이 아니라 이미 발표된, 다수의 견해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석종준 : 총장님께서 보시기에, 우리 한국교회가 창조론을 이야기할 때, 특별히 다음 세대를 위한 창조론 교육과 관련해서 가장 경계해야 하거나 회복해야 할 태도는 무엇일까요?
양승훈 : 첫째로, 아이들의 창의성을 격려하는 것입니다. 창의성은 인간에게 주신 하나님 형상의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입니다. 창의성을 격려한다는 말은 질문하는 것을 격려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 지도자들은 질문하지 않고 믿는 맹목적 태도나 반지성주의를 경건으로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특별히 AI 시대에 AI를 가장 잘 활용하는 방법은 좋은 질문을 만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처음 만나는 자리에 없었던 도마가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요 20:25)고 했는데요. 다시 나타나신 예수님은 도마를 꾸짖지 않으시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요 20:27)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질문하는 신앙, 의심하는 신앙을 가졌던 도마가 결국 모든 제자보다 더 멀리, 인도 남부에까지 가서 순교했다는 얘기는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둘째로, 어릴 때부터 지적 세계의 제사장적 소명 의식을 갖도록 격려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모두가 학자가 될 필요는 없지만 우리는 아이들이 후에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제사장적 자세를 갖도록 도와야 합니다. 오늘날 교회에서는 사례비를 받는 목회자들만 제사장적 소명을 갖는 것으로 오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만 이것은 바르지 않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베드로전서 2장에서 우리를 가리켜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벧전 2:9)이라고 했습니다. 목회자들만 제사장이라고 하는 생각은 비성경적이며, 중세적 사고요, 반 종교개혁적 사고입니다. 아이들이 어떤 전공을 하든지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하나님의 창조 세계에 대한 왕 같은 제사장이 되도록 격려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석종준 : 마지막으로 AI 시대를 살아가는 한국 그리스도인들에게 창조 신앙은 왜 여전히 중요한지요? 가장 강조하고 싶은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양승훈 : 첫째, 철학에 많은 분야가 있지만 그중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 바로 존재론입니다. 즉 존재론은 존재의 근본적인 본질, 시간, 공간, 우주의 원리 등을 탐구하는 학문입니다. 이 존재론에 대한 논의 없이 인식론, 윤리학, 논리학 등의 논의는 이루어질 수가 없습니다. 둘째, 창조 담론은 자신과 주변 세계의 존재에 대한 논의이기 때문에 어느 시대, 어느 민족에게나 관심이 많습니다. 그래서 시대와 민족을 불문하고 창조론 논의에는 뜨거움이 있습니다. 현대적 논쟁과는 다소 다르지만, 교회사를 살펴보더라도 초대교회 때부터 창조론 논쟁은 뜨거웠습니다. 이것은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셋째, 창조 담론은 기독교의 근본적인 교리들과도 직결되어 있습니다. 칭의론, 구원론, 교회론, 종말론도 결국 존재론적 논의의 범주에 속한다고 할 수 있기에 창조 교리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그리스도인이 창조론 전문 학자가 될 필요는 없지만 진지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창조 담론이 자신의 신앙과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지를 진지하게 연구하고 성찰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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