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6년 전 기독교학문연구회(이하 기학연) 학술대회 때 발표한 적이 있다. 동서대학교 교수로 부임하고 보건의료계열 학부장을 하면서 기독교적 가치에 따라 강의와 연구를 하던 열정이 많았던 때였다. 그때 내가 발표한 내용은 자신의 신앙고백이기도 하고, 믿음의 실체에 대한 것이었다,
믿음은 무엇인가? 당사자들에게는 마약, 도박, 이단 등과 같은 잘못된 믿음도 진심일 수 있는데, 과연 그것도 믿음의 한 유형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이런 고민을 갖고 기학연 학술대회 논문 발표를 신경과학적 지식을 기반으로 접근하고 준비하였다. 나는 논문에서 들음(Hearing)과 뇌(Brain)에서 일어나는 감각(청각)과 인지의 과정들, 그리고 인지한 것을 시인하는 운동(구음)까지를 신경과학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비슷한 부류의 연구자들이 이미 있었음을 확인하였다. 또한 나는 오래전 심리학자들이 뇌의 특정 부분을 자극했을 때 그 쾌락을 느끼기 위해서 죽을 때까지 자해하였던 생쥐실험을 통해 뇌의 ‘쾌락보상회로’(reward circuit)을 발견하고, 현재는 이를 적용해서 마약, 도박 등 좋지 않다고 알면서도 계속 그것을 추구할 수밖에 없는 중독자들을 이해하고 치료하는 방법으로 쓰이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나는 이 논문 발표 직후를 잊을 수가 없다. 청중 반응은 의아하다는 표정들이었다. 한순간 정적이 흘렀다. 나도 “어떻게 과학을 한다는 내가 여기까지 왔는가?”를 자문하며 질문에 답을 했다. 좌장을 맡으신 카이스트의 어느 명예교수님은 이렇게 말씀했다. “정말 좋은 논문입니다. 혹시, 뉴턴이 만유인력을 어떻게 발견했는지 아십니까? 뉴턴이 사과나무 밑에서 주기도문을 외우고 있었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이 고백하는 순간 사과나무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통찰하여 나온 것이 만유인력이라는 이론입니다.”
만유인력은 누가 가르쳐준 것이 아니었다. 깊은 묵상과 통찰로 하나님을 묵상하며 하나님께 받은 받은 은혜의 선물이었다. 나는 뉴턴이라는 과학계의 큰 거인이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만유인력을 발견했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동안 내가 알고 있던 과학계의 큰 산과 같은 이론과 법칙이 인간에게서 온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라면 어떠셨을까? 완전한 인간이셨던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조차도, 믿음의 결단을 위한 고민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내가 이 십자가를 져야 하나?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과연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2025년 여름방학 중에 대전 카이스트를 방문하게 되었다. 직접 방문은 처음이었다. 인상적인 것은 교내에 장영실 동상이 세워져 있다는 것이었다. 역시 세계관이 다른 대학이라고 생각했다. 교정에는 뉴턴이 만유인력을 발견했다는 바로 그 사과나무도 있었다. 정확히는 그 사과나무를 네 번째 접목한 사과나무가 있었다. 나무를 보는 순간 나는 6년 전 학회 때 카이스트 좌장 교수님께서 했던 말씀이 생각났다. 나는 현재 그 논문 발표회를 마치고 찍은 사진으로 내 카카오톡 소개 이미지로 삼고 있다.
다시 질문해 본다. 믿음이란 무엇인가? 어느 날도 난 어김없이 동서대 대학교회로 향하였다. 나는 매달 첫날 이렇게 교회로 향한다. 우리 교회는 매일 새벽예배를 드리지만, 특별히 매달의 첫날은 온 성도가 함께 모여 드린다. 나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직장이며 교회인 그곳에서 늘 그렇게 매달 첫날 새벽예배를 드린다. 서울 상도교회를 섬기신 부모님께 받은 믿음의 유산이 이곳 부산 주례동에서 계속 이어지고 있다. 참 벅찬 일이다. 특별히 그날은 예배에 조금 늦었는데, 예배당에 앞에서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 분의 차가 시동이 켜진 채 그대로 있었다. 그 차의 주인은 예배에 한 번도 빠진 적이 없는 설립자이자 이사장님이었다. 무엇인가 이상했지만, 새벽예배는 끝났고 나는 그날도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해부학’과 ‘보조기 및 의지학’을 가르쳤다.
믿음이란 무엇인가?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의 삶을 묵상해 본다. 십자가 위에 아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마음은 어땠을까?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헌신과 봉사, 그리고 실천을 통해 공동체를 신실하게 섬겨 왔을 것이다. 어머니의 그러한 마음도 진실한 믿음이었을 것이다. 자신의 믿음 위에 더 큰 하나님의 권위와 섭리를 인정하고 순종하며 버텨야만 했던 믿음이 아니었을까. 성경은 믿음을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히 11:1)라고 말씀한다. 믿음은 눈에 보이는 결과보다 먼저 존재하는 내면의 확신이다.
또 질문해 본다. 예수님은 왜 십자가를 선택하셨을까? 믿음은 무엇인가? 왜 우리는 그 믿음을 붙잡아야 하는가? 새벽, 하루를 시작하며 믿음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해 본다. 믿음은 단순히 종교적 확신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나는 믿음이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가치이며, 공동체를 지탱하는 정신적 토대라고 생각한다. 특히 오늘날과 같이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믿음은 개인과 사회를 안정적으로 이끄는 가장 중요한 힘이 된다. 신앙의 관점에서 볼 때 믿음은 하나님을 향한 신뢰이며, 학문의 관점에서는 진리 탐구를 지속하게 하는 내적 동력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신앙과 학문’은 서로 대립하는 영역이 아니라 믿음을 중심으로 연결되는 동반자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나는 이번 주도 어김없이, 흔들림 없이 교회의 가장 앞 자리에서 예배를 드린다. 그 믿음을 보고 계신 살아계신 하나님을 느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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