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기억을 되짚어 보면 나는 교회에서 이따금 ‘금쪽이’로 불리던 아이였다. 고등학생 때에는 자습시간이 싫어 채플로 도망갔던 내가, 학부 때에는 CCC에서 순장으로 섬기며 예수님의 마음을 차차 알아갔다. 그리고 이제는 연구실의 유일한 ‘예수쟁이’(?)로 살아가고 있다. 이 글에서는 그 여정의 한 자락을 조심스레 풀어 보려 한다.
꼭 지금처럼 태양이 뜨겁게 작열하던 땅, B시에서의 일이다. 당시 나는 졸업작품 마감을 두 달 앞두고 있었다. 그러나 교수님의 “별로다”라는 말 한마디에 한 학기 동안 붙들고 있던 수고가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는 듯했다. 뒤늦게 대학원 진학을 결심했지만, 컨택에 성공한 연구실은 한 곳도 없었다. 여러모로 마음이 불안하고, 앞날이 선명히 보이지 않던 때였다.
그곳에서 복음을 전하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웠다. 외국인이 공개적으로 선교하기 어려운 환경이었기에, 식사 자리에서 기도하는 일조차 조심스러웠다. 눈을 뜬 채 마음으로 기도했고, 복음도 한 사람씩 만나 관계를 쌓아 가며 신중하게 전해야 했다. 짧은 일정 속에서 30도를 훌쩍 넘는 폭염과 언어 장벽도 감당해야 했다.
그렇게 어렵게 대화가 이어져도 예수님의 이야기를 꺼내면 공산당원이 되기를 꿈꾼다고 말하거나, 자신은 유물론을 믿는다며 단호히 거절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한 번은 우정을 생각해 공안은 부르지 않겠지만 다시는 캠퍼스에서 일체의 종교활동을 하지 말라는 경고를 듣고, 가슴이 콩알만 해진 적도 있었다.
내가 붙들 수 있는 것은 성령님의 도우심뿐이었다. 말재주로도, 전략으로도 한 영혼의 마음을 열 수 없다는 사실을 매 순간 절감했다. 그래서 걸음마다 기도하듯 걷는 ‘3보 1기도’는 어느새 일상이 되었다. “주님, 마음 밭 좋은 한 영혼만 보내주세요. 제가 알아볼 수 있게 해주세요.” 그렇게 기도하던 중 한 여학생을 만났다. 나는 여행 온 대학생이라고 소개하며 현지인이 추천하는 장소를 물었다. 뜻밖에도 그 학생은 선뜻 나를 베이징의 한 예술박물관으로 안내해 주었다. 사실 작품은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내 머릿속은 온통 언제, 어떤 말로 복음을 전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뿐이었다.
그러다 아주 섬세한 작은 건축 조형물 앞에서 발걸음이 멈췄다. 얇은 선 하나, 작은 기둥 하나까지 정교하게 다듬어진 모습을 보는데 나도 모르게 말이 새어 나왔다. “와, 이거 만든 사람은 며칠이나 밤을 새웠을까?” 졸업작품을 앞둔 예비 창작자였던 나는 그 작품 앞에서 괜히 남 일 같지 않은 마음이 들었다. 저 작은 결과물 하나를 위해 얼마나 많은 고민과 수정, 포기하고 싶은 밤들이 있었을까. 그런데 그 감탄은 곧 더 큰 감탄으로 이어졌다. 이렇게 섬세한 작품을 만들어 낸 인간도 이토록 대단한데, 그런 인간에게 생각하고 상상하고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신 하나님은 얼마나 놀랍고 전지전능하신 분인가. 작품이 창작자의 손길을 드러내듯, 인간의 창의성은 창조주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비추고 있었다.
그 순간 이상하리만큼 마음이 뜨거워졌고, 그 자매에게 내가 느낀 감탄을 그대로 나누기 시작했다. “이 작품을 만든 사람도 정말 대단하지만, 이런 걸 만들 수 있는 사람을 지으신 하나님이 더 놀랍다고 생각한다.” 준비해 간 말도, 계산한 타이밍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 고백은 자연스럽게 나의 간증으로 이어졌다. 내 마음에 그런 감동을 주신 분도, 그 말을 용기 내어 꺼내게 하신 분도 성령님이셨다.
현재 내가 속한 연구실(Smart Structures Lab)의 주된 연구는 AI를 활용한 구조설계이다. AI는 수많은 설계 대안을 만들고, 구조 성능을 예측하며, 사람이 미처 보지 못한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 능력 앞에서 놀랄 때가 많다. 동시에 구조를 공부할수록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을 더 생각하게 된다. 건물은 겉모습만으로 서 있지 않다. 하중의 흐름, 재료의 성질, 연결부의 작은 디테일이 전체의 안전을 좌우한다. 그래서 연구실에서 마주하는 수식과 알고리즘도 내게는 단지 성과를 위한 도구가 아니라, 하나님이 지으신 세계를 더 성실히 이해하고 이웃의 안전을 섬기기 위한 언어처럼 느껴진다.
베이징에서 만난 그 자매를 떠올릴 때마다, 나는 창조가 단순한 산출이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붙든다. 인간은 성능과 생산성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인간의 창의성, 사랑, 실패와 회복의 이야기는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존재임을 증언한다. AI가 아무리 뛰어난 결과물을 만들어도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부르심까지 대신할 수는 없다. 작품이 창작자를 가리키듯, 인간의 존재는 창조주 하나님을 가리킨다.
기술이 더 빠르고 정교해질수록 나는 더 선명히 고백하게 된다. 지식의 시작도, 창의성의 근원도, 사람이 사람답게 존귀한 이유도 창조주 하나님께 있다. 그래서 묻게 된다. 이 지식은 누구를 위해 쓰여야 하는가. 이 구조물은 누구의 삶을 지키는가. 그리고 나는 오늘 이 자리에서 누구의 이름을 드러내며 살고 있는가. 내가 마주하는 수식과 알고리즘, 설계와 연구의 시간이 하나님이 지으신 세계의 질서와 아름다움을 더 깊이 알아가는 통로가 되기를 소망한다. 그리고 나의 배움과 삶이 결국 나를 지으시고 이 땅을 붙드시는 창조주 하나님께 올려 드리는 작은 찬양이 되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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