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나는 2026년 2월에 약학 전공으로 학부를 막 졸업하고 대학 선배님이 운영하는 약국에서 일하면서 군대 입대를 기다리고 있다. 대학 시절 서울대학교회(이하, 대학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시작하였고, 그리스도인으로 나름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대학 캠퍼스 생활 동안 나를 가장 많이 변화시킨 것은 무엇이었을까를 생각해 보았다. 말씀 앞에서 무릎 꿇고 회개하던 밤, 어르신의 손을 잡고 고맙다는 말을 듣던 순간 등 모두 관계의 순간들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늘 관계를 통해 나를 이끄셨고, 또 관계로 나아가게 하셨다.
첫째는 하나님과 관계한 것을 이야기하고 싶다. 대학교회에 와서 가장 처음 배웠던 것은 말씀 묵상이었다.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일요일 하루만 교회 활동을 열심히 하면 구원받는 것으로 생각하며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고 그러한 나를 교회의 우등생으로 여겼다. 그런데 매일 일정 분량의 성경 말씀을 묵상하고 경건의 시간을 실천하던 대학교회 사람들을 보며, 내 신앙생활의 부족함을 깨달았고 매일 말씀 묵상에 동참했다. 처음부터 묵상이 잘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신앙생활로 하기보다도 타성으로 하다 보니 표면적이고 피상적이었다. 이해가 되지 않던 말씀들은 그저 의문을 품고서 살아갔다. 하지만 어느 순간, 말씀이 깨달아지는 것을 느꼈다. 말씀으로 나를 회개하게 하시고 변화시켰으며 삶의 자리마다 찾아오시는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었다. 기억에 남는 장면은 연애할 때이다. 연인과의 전화를 마치고 말씀을 읽으며 묵상하던 와중 내가 얼마나 이기적인지,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런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알려주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기도 중에 어떻게 사랑해야 할지 하나씩 가르쳐주셨고, 연인에게 했던 모진 말들에 사과했다. 이러한 순간들이 모여, 지금은 매일의 말씀 묵상이 삶의 큰 기쁨이 되었다. 피상적이고 타성에 젖은 신앙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개인적으로 나와 관계하시며 이끄시는 하나님을 알 수 있었다.
둘째는 이웃과의 관계이다. 의료봉사 동아리에 가입하여 활동한 적이 있다. 여름방학마다 근처에 병원이 없는 무의촌으로 장기봉사를 나가 진료를 보았고 해당 지역에서 병원 방문이 필요하지만, 거동이 힘든 어르신들의 댁에 직접 방문하여 진료를 보며 봉사했다. 의료계 현업에 계시는 동아리 선배님들께서 진료하시는 모습을 볼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고, 학생들끼리 진료할 때 보이지 않던 변화가 선배님들이 진료할 때 비로소 보였다. 선배님께서는 간단한 상담만으로 환자의 약 복용을 조정하셨고, 그것만으로 약의 부작용이 치료되는 장면을 직접 보았다. 진료받은 어르신께서 내 손을 잡고서 고맙다고 얘기해 주신 것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따뜻했던 손 그리고 울 듯하게 찡그린 표정이 나의 가슴속에 박혔다. 고아와 과부를 돌보라던 말씀이 그 순간 머리에 번뜩였고, 이 시대에 소외된 자로 힘든 삶을 살아가는 어르신을 향한 깊은 긍휼이 밀려왔다. 이웃과 관계함으로 그들을 향한 긍휼의 마음이 내 안에 심어졌다. 남을 치료하는 곳에서, 나 또한 치유 받았고 변화되어 갔다.
마지막으로 하나님 앞에서 나 자신을 발견한 것이다. 대학 시절 전공 공부하며 주위 친구들에게 왜 공부하는지 물어본 적이 있다. 그때마다 친구들 대부분은 별 목적이 없고, 그런 것을 물어보면 머리만 아파진다며 물어보지 말라고 했다. 문득 시험 기간 약물 이름과 기전을 생각 없이 괴롭게 외우고 있던 나에게도 비슷한 질문을 해봤다. 나는 무엇을 위해서 공부하고 있고, 어떤 사람이고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가 하는 것이었다. 죄인인 나 자신보다도, 하나님 앞에서 창조 본연 나의 모습이 어떠한지 고민했다. 처음에는 나도 친구들과 다르지 않게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여러 날을 말씀 묵상하고 기도하며 씨름했다. 답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기다림이 길어질수록 초조함도 깊어졌다. 그때 떠오른 것이 무의촌에서 어르신의 손을 잡았던 순간이었다. 강렬했던 그때의 긍휼이 다시 나를 잡아당겼다. 소외되고 아픈 사람들을 대면하고 그들을 치료하고 싶은 것이 나임을 알았다. 그들을 향해 긍휼한 마음을 주신 하나님의 마음을 알았고 그것을 위해 지금 공부하고 있다고 결론지었다. 이렇게 말씀과 기도 안에서 나 자신을 들여다보며 나를 향한 부르심을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말씀 묵상과 기도로 그 길이 내가 나아가야 할 길임을 확신을 주고 계신다.
구체적으로 의료의 최전선에 있는 환자들을 눈으로 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병원 약사의 진로를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그 모양이 어떠하든 하나님께서는 나를 소외되고 아픈 사람과 관계하도록, 그리고 그들을 변화시키며 나 또한 변화시키시도록 이끄신다. 그 소명을 향한 오늘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하나님께서 또 어떤 관계로 나를 이끄실까. 지금은 군대를 기다리며 지역 약국에서 잠시 일하고 있다. 카운터 너머로 찾아올 환자를 기다리며 매일 무의촌에서 어르신으로 느꼈던 긍휼을 기대한다. 한 명의 지나치는 환자를 만날 때에도 그분의 필요를 채우며 나 또한 배우며 나아가고 있다. 오늘도 말씀을 묵상하며 내가 나아가야 할 길을 기도로 묻는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나를 관계로 부르시고, 관계로 보내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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