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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킨스를 머리끝까지 화나게 만든 영화
나단 프랭코스키(Nathan Frankowski)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추방: 허용되지 않은 지성>(Expelled: No Intelligence Allowed, 2008)은 호전적 무신론자인 리차드 도킨스를 맹렬히 화나게 만든 영화로 유명하다. <만들어진 신>을 통해 창조론을 호되게 비판했던 그가 정작 ‘지적설계론’(Intelligent Design)을 옹호하는 영화의 전면에 등장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당초 제작사인 램팬트 프로덕션은 <추방>이 아닌 <교차로>(Crossroads)라는 중립적인 가제를 내세워 “종교와 과학이 만나는 접점의 논쟁을 다룬다”라고 접근해 도킨스의 인터뷰를 끌어냈다. 그러나 완성된 영화는 진화론을 중심에 둔 과학계를 ‘편협하고 억압적인 조직’으로 몰아붙였다. 영화에서 도킨스는 사회자로 출연한 미국의 교사 출신인 영화 제작자 벤 스타인(Ben Stein)의 능청스러운 질문에 “종교는 가장 흔한 형태의 미신으로 정말 쓸데없는 것”이라고 불평을 늘어놓았지만, 그는 생명의 기원만큼은 설명하지 못하고 허둥대는 모습을 보이고 말았다. 과학계 최고의 이 달변가가 버벅대는 모습은 이 영화 최고의 명장면으로 꼽을 만하다.
영화는 지적설계론에 우호적 견해를 표명했다가 불이익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과학자들과 교수들의 사례를 추적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지적설계론 논문을 쓰는 바람에 학계에서 매장당한 리처드 스턴버그 박사, 그리고 이와 유사한 연구 성향을 가졌다는 이유로 아이오와 대학에서 종신 교수직을 거부당한 천체물리학자 기예르모 곤잘레스 등의 실제 사례를 추적했다. 이는 지성의 전당인 대학과 과학 연구 기관이 ‘초자연적 지성’을 언급했다는 이유만으로 학자들을 어떻게 매도하고 추방하는지, 그 억압적 실상을 영화라는 대중적 매체의 파급력을 극대화하여 고발하는 탁월한 구성을 보여준다.
설명 중심 구조의 기존 다큐멘터리와는 달리 탐사 저널리즘 형식을 적극 활용한 것도 이 영화의 큰 특징이다. 스타인은 직접 대학과 연구기관을 방문하고, 지적설계론자와 진화론자를 차례로 인터뷰하면서 일종의 ‘진실 추적극’을 만들어낸다. 또한 베를린 장벽, 전체주의 체제, 홀로코스트 이미지 등을 반복적으로 삽입해 과학적 논쟁을 문화적·철학적 갈등의 차원으로 확장시켰다. 영화적 완성도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지만, 논쟁적 다큐멘터리가 사회적 의제를 형성하는 방식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다큐멘터리 영화사적으로도 흥미로운 사례라 할 수 있다.
영화 속 지적설계론과 극명하게 갈린 반응
전통적인 창조론이 성경의 권위에 기반한 신앙적 선언이었다면, 영화가 제시하는 지적설계론은 ‘과학의 방법론’을 표방한다. 현대 진화론 중심의 일반 학계는 지적설계론을 향해 “비이성적이며 몰과학적인 종교적 주장일 뿐”이라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영화 <추방>은 세포의 복잡성, 생명의 기원 문제, 우주의 미세조정 등을 제시하며 설계의 가능성을 강조한다. 특히 지적설계론은 성경을 직접 인용하지 않고 자연계의 복잡성을 근거로 논의를 전개한다는 점을 부각시킨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진화론에 대항하여 지적설계론의 과학적 승리를 입증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영화의 핵심 설득력은 “지적설계론이 옳다”라는 주장보다 “그 주장을 제기할 자유는 보장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있다. 학문 공동체가 특정 가설을 반박하는 것과, 아예 논의의 장에서 배제하는 것은 다른 문제라는 점을 영화는 집요하게 제기한다.
영화는 미국에서 개봉 첫 주 박스오피스 9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결과였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영화가 공개되자 미국 사회는 거대한 논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특히 영화의 개봉 시점이 미국 대선 유세전이 본격화되는 시기와 맞물리면서, 정치적·사회적 파장은 더욱 증폭되었다. 과학계와 주요 언론은 제작진이 대선 시즌에 맞춰 ‘진화론 대 창조론’ 논쟁을 의도적으로 촉발하고, 이를 통해 ‘보수 대 진보’의 정치적 대결 구도를 부채질하려 한다며 의심과 우려의 눈초리를 보내기도 했다.
반면, 기독교계와 신앙인들은 이 영화를 향해 열렬한 환호와 지지를 보냈다. 과학 다큐멘터리는 지루하다는 편견을 깨고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즐겁고 통쾌하게 볼 수 있는 명작이라는 찬사가 이어졌다. 특히 수련회와 성경학교를 준비하는 교사들에게는 신앙과 과학의 통합을 가르칠 수 있는 ‘최상의 교육 자료’로 평가받으며 교계 전반에 큰 영적 활력을 불어넣었다.
진화론 권력에 맞선 다큐멘터리가 갖는 시대적 의미
오늘날에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대학과 연구 기관에서 신앙적 세계관이 공개적으로 표현되기 어려운 분위기를 경험한다고 말한다. 필자 역시 대학 신입생으로 ‘과학사’를 수강하던 시절 이를 경험할 수 있었다. 한 과학사 교수의 강의를 수강하게 되었는데, 마침 교회 생활을 열심히 하던 내 친구가 수업 중 손을 들고 하나님의 우주 창조 가능성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당시 그 강의실에는 질문한 친구를 포함하여 종교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이 여러 명 있어서 우리는 흥미진진하게 교수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런데 그 교수는 자신의 수업 시간에는 창조론에 대한 어떠한 말도 꺼내지 말라는 거친 말을 내뱉으며 내 친구를 강의실에 쫓아내 버렸다. 그 교수는 나중에 ‘한국의 도킨스’ 같은 유명 인사가 되었고, 내쫓긴 학생은 수강 철회로 맞설 수밖에 없었다.
과학이 특정 결론을 옹호할 수는 있지만, 특정 질문 자체를 금지하는 순간 과학은 탐구가 아니라 이념이 될 위험에 직면한다. <추방>이 제기한 가장 중요한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영화가 기독교 지성인들에게 던지는 도전은 단순히 창조냐 진화냐의 선택이 아니라, 진리 탐구의 장에서 신앙적 관점도 정당한 대화의 파트너가 될 수 있는가 하는 근본적인 물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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