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청년사역연구소를 섬기면서 참 많은 고민과 고뇌를 접한다. 청년과 젊은 사역자들의 고민, 장년 신앙인들의 고뇌, 치열한 삶의 자리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려는 몸부림을 접하곤 한다. 충격적인 일은 한 청년의 말이었다. “목사님, 저희 부서에 상무님이 계시는데 저에게 술, 담배를 계속 권합니다. 그런데 지난 주간 저희 교회에서 만났습니다. 제가 출석하는 교회 집사님이었습니다.” 같은 교회를 다니는 것도 모를 정도로 초대형교회여서 잘 들키지 않고 잘 드러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청년은 그분의 신앙을 위선, 혼합, 타협으로 해석했다.
종종 신학생과 다양한 목사님을 상담한다. 그 상담의 내용이 우리가 알고 있는 잘 알려진 교회 목사님의 드러나지 않은 모습에 관한 이야기인 경우가 있다. 그것도 성 문제나 돈 문제일 경우 참 힘이 든다. 그때마다 상담을 마치면서 해 주는 이야기가 있다. “진짜가 있기에 짝퉁도 있습니다. 목사나 중직자나 직분이나 직위를 보지 마시고 그런 분들을 타산지석 삼았으면 좋겠습니다. 맘몬과 아세라는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끈질기게 우리를 흔들 것입니다.”
나는 청년 사역을 2002년부터 섬겼다. 지금도 학원복음화협의회 공동대표로 섬기면서 개인적으로 청년사역연구소를 페이스북을 통해 섬기고 있다. 지역교회 목회자로 산본교회를 담임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많은 청년과 사역자들을 상담하고 성도님들을 상담한다. 어쩌다 보니 7명의 사역자와 성도들의 돈 문제, 성 문제, 다양한 탈선의 문제를 조사하고 상담하고 치리하는 일에도 관여하였다.
가장 가슴 아팠던 일은 명성교회 세습과 관련하여 수많은 청년과 성도들로부터 상처받은 사연을 접하고 세습 반대 운동과는 거리를 두었던 내가 한 청년의 메시지를 받고 중심부로 들어가게 된 일이다. “목사님, 세습 때문에 고민하고 고통스러워서 교회를 떠나는 청년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돕지 않으려면 청년사역연구소를 그만 두셔야 합니다.” 이 소리가 내게는 하나님께서 청년을 통해 내게 하시는 메시지로 들렸다. 그래서 세습 반대 운동을 같이 하면서 4번씩 기도회를 인도하기도 했다. 그때 많은 고민을 했다. “부, 명예, 권력을 왜 세습하려고 할까?” 그 질문에 대한 답은 ‘공적 신앙’(public faith)으로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어야 하는데 ‘사적 신앙’(private faith)에 머물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사적 신앙에 머물다 보니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마저도 사유화하는 것이다. 교회와 회사를 구분하거나 구별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것이 슬픈 한국교회의 현주소이다.
어느 유명한 목사님은 수십억의 전별금을 당연하게 생각했다가 호되게 비난과 비판을 직면하기도 했고, 어느 유명한 장로님은 회사를 기독교적으로 운영한다고 하면서 열정페이만 요구하다가 사회의 지탄을 받기도 했다. 사실 직분은 목회자요 중직자이지만 삶과 가치관은 맘몬에 사로잡혀 있기에 세속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사적 신앙에 매몰되고 신앙과 삶이 세속화되면 그리스도의 제자가 아닌 종교인으로 살아간다. 하나님 나라를 위한 신앙과 삶의 자리는 사라지고 욕구, 욕망, 욕심을 마음껏 탐하며 살아가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얻은 부, 명예, 권력을 하나님의 축복으로 포장한다. 결국, 이것은 예수님의 제자가 아닌 종교인의 수준에 머물거나 신앙인의 불신앙은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하기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런데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난 사도 바울처럼 진짜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성경을 진리로 깨닫고 성령의 역사하심을 경험하게 되면 사리사욕을 추구하는 삶이 싫어지고, 미워지고, 역겨워지게 된다. 부, 명예. 권력이 보장된 편안한 삶보다 환난과 핍박이 있지만, 하나님 나라와 복음을 위한 평안을 나누는 신앙과 삶의 자리로 나아가게 된다. 그것이 정직한 모습이다.
나는 청년사역연구소를 섬기면서 매일 글을 올린다. 그때마다 고민하며 던지는 질문이 있다. “이것은 성경적인가? 종교인이나 무리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의 길인가?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 성경이 나침반이 되게 하고, 무리가 아닌 제자의 삶을 추구하고, 예수님처럼 작은 예수로 살아가도록 돕는 것에 가치와 의미를 두고 씨름한다. 그 결과 공적 신앙, 성경적 신앙, 본질적 신앙을 추구하는 길로 나아가는 섬김과 사역을 하게 되었다. 교회의 사역과 섬김이 낮은 곳으로, 시간과 물질과 마음을 흘려보내는 성육신적 섬김을 지향한다. 지역의 노인복지관, 장애인복지관, 노인요양원 등 어려운 것으로 향하는 기관과 연결하여 지지하고 지원하는 일들을 이어간다. 감사한 것은 대학교 1학년 때부터 공적 신앙을 고민하면서 시작했던 보육원 섬김이 지금도 내가 만들었던 ‘아이사랑’ 동아리를 통해서 섬김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최근에 신학대학원에서 그러한 메시지와 간증을 나누었더니 낮은 곳으로 향하는 동아리가 또 생겨서 기뻤다.
한국교회 그리스도인은 여전히 곳곳에서 빛을 밝히는 존재들이다. 세상의 고통 소리가 있는 곳에 그리스도인들이 참 많다. 그래서 여전히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감사하며 섬기는 그분들에게 고맙다. 그분들에게 이 말을 전하고 싶다. “예수님처럼 작은 예수로 살아가는 당신이 있어 세상은 그만큼 더 아름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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