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진보적인 지식인이었던 아버지는 기독교에 대하여 비판적이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신실한 신자였다. 두 사람의 갈등은 참으로 험난하였다. 그런데 아들이 목사가 된다고 하였을 때 집안은 난리가 났다. 아버지가 기독교에 유독 비판적인 이유는 역사 속에서 벌어진 그리스도인들의 태도 때문이었다. 기독교도 싫고 교회도 싫고 더구나 예수님도 믿을 수 없다고 하였다.
그 시간 가장 고민스러운 것은 복음을 아버지에게 제대로 전하는 일이었다. 그때 주님은 프란시스 쉐퍼의 책을 만나게 해주었다. 그리고 정직한 질문과 정직한 답을 나누는 과정을 깨닫게 하였다. 이러한 과정 가운데 뜻하지 않는 사건이 일어났다. 바로 소련의 개혁이었다. 소련이 무너지고 유럽의 지형이 바뀐 것이다. 이때 아버지가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서구 사상과 복음에 대한 이해를 중심으로 정직한 대화의 과정을 이어갔고 마침내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는 일이 일어났다. 그렇게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고 직분자가 되어 신앙생활을 하다 하나님 품에 안기었다.
이 사건은 신앙인과 목사로서의 삶에 큰 전환점이 되었다. 한 사람의 변화는 신앙의 변화, 세계관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 신학적으로 회심을 말하지만, 회심이 단지 영적인 면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지성까지 새롭게 되어야 한다. 그래야 종교인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으로 살 수 있다. 이러한 문제 의식을 가지고 지역에서 교회를 세워가고 있다. 천하보다 귀한 한 사람을 세우기 위하여 목회하고 있다. 교회의 평생 사명은 개혁과 부흥을 통한 하나님 나라 확장이다. 이를 위하여 교회로 모이고, 교회로 흩어지고 교회가 되는 신앙을 공유하고 있다.
교회는 흩어지기 위하여 모이고, 모이면 세상으로 흩어지기 위하여 힘을 다한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위한 기도에서 저들을 세상에 보낸다고 하셨다. 세상에 보내는 것이 예수님의 사역이었다. 여기에 교회의 사명이 있다. 바로 신자를 세상에 보내는 일이다.
니버의 관점에서 본다면 현실은 어둡다. 개인들이 집단을 이루면 집단의 이익과 권력이 개인보다 훨씬 강하게 작동한다. 그 결과 집단은 자신의 이기적 욕망을 정의와 공익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하기 쉽다. 이렇게 이기적이고 탐욕적이고 권력 중심으로 모이는 세상은 사랑과 정의가 잘 보이지 않는다. 실제로 우리는 공정한 사회를 외치지만 60% 이상은 우리 사회가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부의 양극화, 권력의 탐욕,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와 배제는 도덕적인 사회의 모습으로 볼 수가 없다.
교회는 어떤가? 한국 사회는 전쟁과 극심한 가난의 시간을 매우 빠르게 극복하고 성장하였다. 여기에 교회가 큰 역할을 하였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기복주의 신앙과 개교회주의다. 삼박자 축복을 대변되는 한국교회는 성장하면서 이원론적 신앙으로 굳어졌다. 그리고 기득권 세력의 주체가 되어버렸다. 오직 성장과 물질적 성공이 신앙의 모토가 되었으며, 주일의 삶은 월요일의 삶으로 연결되지 않았다. 오직 교회당 중심이 신앙의 전부였다.
'꿩 잡는 게 매'라는 속물의 논리가 교회를 침범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성공을 축복이라 포장했고, 직분은 회심의 열매가 아닌 세상적 성공의 대가로 거래되기도 했다. 신앙은 세속화되었고, 광장의 정치 구호는 강단을 점령했다. 선지자적 선언과 정치 선동이 구별되지 않는 비극이 지금 우리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교회가 세속화되자 세상은 교회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교회의 말이 세상에 선지자의 음성으로 들리지 않는다. 다만 서로 성공하는 다른 길로 생각하게 되었다. 90년대까지는 교회 가면 그래도 좋은 것을 배운다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지금은 교회 가면 나쁘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기윤실이 조사한 2026년 통계에서 교회의 사회적 신뢰도는 19%에 머물고 있다. 그런데 사회적 불신도는 75.4%에 이르고 있다. 중간단계가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교회는 영향력도 숫자도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
한국교회 안에서도 세속주의와 물질주의와 권력 지향성이 강하게 나타나면서 교회의 도덕적·공적 신뢰가 크게 훼손되고 영향력도 지속적으로 약화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교회의 모습은 아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의 거룩함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세상 가운데 보내셨다. 그리스도인은 세상 속에 존재하며 세상을 변혁의 자리로 이끄는 소명을 가지고 있다.
이 일은 지역교회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교회로 모여서 바른 복음과 정직한 질문과 답을 얻는 훈련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세상으로 흩어져야 한다. 우선 교회는 지역에 존재하고 지역을 섬겨야 한다. 지난 22년 동안 지역의 독거노인과 노숙자를 섬기는 일을 하였다. 지역교회와 연합하고 교회를 개방하였다. 재정 투명성 운동과 비빌 언덕 사역을 통하여 집을 얻는 일에 함께하였다. 그리고 신자들로 하여금 각 영역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나타내도록 훈련하고 파송하였다. 개인적으로 기독 시민운동과 청년 운동에 힘을 다하였다. 작지만 주어진 일을 감당하고 변방에 있지만 중심을 깨우는 것이 공동체의 구호이다.
교회는 세상 속에 존재하지 산속에 있지 않다. 신자 역시 세상으로 보냄받기 위해 교회로 모여 예배한다. 성경은 ‘문화 명령’(창 1:26-28, 2:15)을 통하여 삶의 자리로 나가야 함을 명령하였다. 그리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마 22:39)라는 말씀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3:34)라는 사랑의 계명을 받았다. 이것은 신자의 신앙이 단지 사적인 영역에 머무는 것이 아님을 명령하고 있다. 한국교회가 선지자적 사명과 거룩한 영향을 회복하는 것은 교회로 흩어져 살아가는 일을 위하여 교회로 모여 거룩을 준비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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