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인간도 잘하면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데 공헌할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레던 젊은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세계 수많은 나라를 다니며 살펴본 후에는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 실현은 메시아가 직접 오시기까지는 불가능하겠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1980년대 영국과 북유럽 나라들은 복지국가 건설의 자부심이 대단하였다. 그러나 그 나라들의 현실은 어떠한가? 사람들은 복지가 권리가 되었을 때, 일을 안 하면서도 너무 당당하고, 생산성은 사회 전반적으로 저하되었으며, 영적 측면의 존중이 사라지자, 삶에서 신앙과 도덕의 중요성도 약화되었다.
내가 자주 방문했던 스웨덴에서는 임신부터 대학 졸업 때까지 모든 비용을 국가가 제공하게 되자 부모 역할이 약해져서 가족의 가치에 대한 개념과 사고가 달라졌다. 영국에서는 대처(Margaret Thatcher) 수상이 국영기업을 민영화하고 노동운동을 탄압하고 복지를 삭감하면서도 참신한 개혁으로 영국병을 치유했다는 평가가 있었는데, 이제는 오히려 빈부격차를 키우고 기본 복지조차 없애버린, 나라를 망친 주범으로 지목된다. 독일에서는 메르켈(Angela Merkel) 총리가 안보는 나토를 통해서 미국에서, 에너지는 러시아에서, 경제는 중국과 협력으로라는 정책 추구로 한때 EU를 더 굳건하게 하고 세계평화에도 공헌하는 위인으로 주목받았으나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다. 즉, 현재는 러시아 우크라이나의 전쟁으로 에너지 위기가 초래되었고, 중국에 기술을 넘겨주므로 기계와 자동차 산업이 위기에 처했으며, 안보도 미국에 전처럼 의지할 수 없게 되어 유럽 쇠락에 책임이 있는 지도자로 불리게 되었다. 유고슬라비아에서는 한때 회사 이익을 공산당이 아니라 회사 노동자들에게 공평하게 나누어 주었다. 이 정책은 몇십 년 동안 나름 잘 진행되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실상은 이것이 이익 분배에만 집중하여 기업의 혁신을 막고, 그래서 거의 모든 기업은 망했으며, 가중된 어려움으로 국가 내 여러 민족 집단들이 분열되어 서로 학살을 자행하는 참사를 빚었다.
따라서 나는 아무리 좋은 사회의 어떤 정책도 인간의 죄성과 집단들의 이기심 때문에 그 자체로 정의를 이루게 할 수는 없다는 니버(Reinhold Niebuhr)의 주장에 동의한다. 예시하였듯이 인간 사회에서는 선의로 시작한 많은 것들이 시간이 지나면 그 본래의 뜻과 다르게 사회, 국가 그리고 세계에 재앙으로까지 귀결된 경우가 빈번하다. 나는 마르크스가 가난하고 탄압받는 노동자들을 위해 이론적으로는 정말 좋은 제안을 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스탈린과 모택동은 그들의 인간적 죄성으로 말미암아 혁명 이후 약속한 노동자들의 유토피아를 실현할 수 없었다. 따라서 나는 우리가 인간 사회에 어떤 시스템 확보를 통한 해결책이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좋게 보이는 정책도 시대가 흐름에 따라 계속 고쳐나가야 한다. 마치 유대인들이 모세 율법을 시대에 따라 계속 재해석하고 사회의 정의구현에 도움이 되도록 하였던 것처럼 말이다.
니버는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에서 인간 사회의 정의란 집단 간 견제와 균형을 통해 부분적으로 실현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최근 나는 서울대에서 개최된 ‘제11회 기독청년학생 연합 북콘서트’에 초청 패널로 참여했다. 나는 거기서 함께 한 토론자이셨던 두 교수님이 세상의 개혁과 관련해서, 끊임없는 개인들의 역할을 강조한 것으로 이해한다. 손봉호 교수님(서울대 명예교수)은 죄로 물든 사회에서 그리스도인의 지속적인 선지자적 사명을 품은 삶으로 좀 더 나은 세상이 되게 하려는 노력을 강조하였다. 조동준 교수님(서울대 정치외교학부)은 “내가 받은 선의·도움·혜택을 다른 사람에게 다시 베푼다”라는 의미의 ‘Pay forward’라는 제목으로 자신의 유학 시절에 도와주었던 미국인 부부를 본받아서 이제 본인도 아내와 함께 한국에 온 유학생, 다문화가정과 탈북자 가정 출신의 청소년들을 도와 온 일들을 들려주었다. 즉, 한때 도움받던 한 개도국 청년이 이제 다른 나라 출신의 청년들을 돕게 된 릴레이와 이 과정에서의 개인 역할의 중요성을 이야기한 것이다.
나는 이렇게 ‘Pay forward’ 할 수 있는 연결고리를 만드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Pay back’ 즉 도저히 자신이 받은 것을 갚을 수 없는 사회적 약자들을 돕는 일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한국 자폐인 사랑협회’는 2006년 자폐아들이 부모가 죽은 후에도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자는 취지로 생겨났다. 나는 이를 함께 준비하는 과정에서 당시 지자체나 기관들이 자폐아 수용지로 권유했던 장소인 어느 무인도에 갔었다. 나는 거기서 장애인을 죄인 취급하여 귀양보내는 것 같다는 인식을 받았었다. 북콘서트에서 손봉호 교수님도 동네에 장애인 시설이 들어오면 집값이 떨어진다며 지역 주민들이 반대했을 때, 장애인 부모들이 무릎을 꿇고 비는 일이 있는 현실을 규탄하셨다.
나는 오랫동안 노숙인 섬김, 중독자 관련 연구를 하시는 분들을 함께 도우면서, 받은 것을 갚을 수 없는 분들에게 한 일들이 가장 보람이 되었던 것 같다. 영등포 역전에서 노숙자들에게 침낭을 나누어 주던 몹시 추운 겨울 어느 날 밤이었다. 한 노숙인이 다가와 자기 친구가 죽었는데 “교수님 덕분에 그나마 따뜻하게 죽을 수 있어 고마웠다”라는 말을 남겼다고 들었다.
예수님은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눅 10:25-37)에서 “내 이웃이 누구이니이까?”라고 묻는 율법학자를 향하여, 그 이웃은 ‘자비를 베푼 자’임을 일깨워 주셨다. 나는 이 시대에도 “강도 맞아 의식을 잃고 죽어가는 약자들의 이웃은 도대체 어디 있느냐?”라고 묻고 계시는 예수님의 음성을 듣는다. 다행히 이제는 우리 사회도 발달장애 관련법들이 정비되고 많은 발전이 있었다. 그러나 아직도 부채 등으로 파산하였을 때 장애인 자식과 함께, 부모가 동반 자살한 뉴스를 보면 가슴이 아프다. 우리 사회의 장애인 자식을 둔 부모들이 편히 눈감을 수 있는 세상이 속히 오기를 꿈꾼다. 특히 우리 사회가 ‘Pay back’ 할 수 없는 분들을 더 친절하게 더 많이 품는 세상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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