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신자는 하나님 나라에 속해 있으면서 동시에 다양한 사회 제도와 조직에 몸담고 살아간다. 그 과정에서 사회의 관행과 신앙의 요구가 서로 충돌하는 지점을 만나기도 한다. 필자는 그중에서도 사람과 조직을 공적으로 평가하는 일에 대해 생각해 보려 한다.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 이 글귀는 벨사살 왕의 맞은편 벽에 사람의 손가락이 나타나 쓴 글이었다(단 5:24-31). 그 뜻은 하나님이 왕을 저울에 달았는데 부족함이 나타났고, 그래서 왕의 나라를 끝나게 하신다는 것이었다. 바로 그날 밤에 벨사살 왕은 죽임을 당하였고, 바벨론의 국권은 메대와 페르시아로 넘어갔다.
하나님이 심판자이심은 인류 역사 처음부터 선포되었다. 아담이 범죄하였을 때 하나님은 이 선언대로 치죄하셨고, 노아 때의 홍수 심판과 소돔 고모라 불의 심판을 통해 이 점을 재차 확인하셨다. 이처럼 선과 악을 공정하게 평가하고 그에 합당하게 보응하시는 하나님의 의와 공평이 그분의 영원한 통치권의 기초라고 구약의 시인은 천양한다. 지금은 은혜의 때이므로 최종적인 심판이 유보되고 있지만, 정한 때가 되면 모든 사람이 심판주 앞으로 불려 나와 자기의 행위로 심판을 받을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에 의해서도 의와 공평이 이 땅에서 실행되기를 원하신다. 모세는 이렇게 명했다. “너희는 재판에든지 도량형에든지 불의를 행치 말고 공평한 저울과 공평한 추와 공평한 에바와 공평한 힌을 사용하라.”(레 19:35,36) 모세는 공적인 죄를 판결하는 재판과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도량형을 나란히 제시하여 의와 공평이 사회 전반에 걸쳐 시행되어야 할 것을 요구했다. 재판과 평가가 같은 일은 아니지만 적절한 기준을 세우고 그 기준을 치우침이 없이 적용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공통적이다. 사람의 심판은 제한적이고 불완전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심판을 통해서 이 세상의 질서가 유지되기를 바라시는 것이다. 재판을 행사하고 상벌을 시행하는 실무를 담당하는 사람은 소수이다. 그렇지만 사람은 이런저런 방식으로 크고 작은 평가에 참여하게 된다. 사람이 혼자 사는 게 아니라 다층적인 공동체 안에서 살기 때문에 평가는 필수적이다. 공평한 에바와 힌은 상거래에서뿐 아니라 다양한 상황에서 요구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다양한 방식으로 공정한 평가와 재판이 방해를 받는다. 먼저 해당 분야의 공정한 평가 기준을 정하는 것이 쉽지 않다. 곡물의 양을 평가할 때는 부피나 무게를 재면 될 것이다. 그러나 예컨대 학생의 성적을 매길 때에는 어떨까?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성적을 부여할 때 고려해야 할 요소는 학습 목표 달성도, 시험 성적, 과제 수행도, 수업 참여도, 출석 및 수업 태도 등 굉장히 다양하다. 이런 여러 요소 중 어떤 것을 선택하고 각각 얼마만큼의 가중치를 부여할 것인지는 과목의 성격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
타당한 기준이 마련되는 것만으로 공정한 평가가 보장되는 것이 아니다. 기준은 사전에 공지되어야 하고, 평가 과정은 투명해야 하며, 기준 적용의 일관성이 유지되어야 할 것이다. 평가 과정에 결함이 있을 수 있으므로 결과에 대한 이의 제기와 재판정의 기회도 제공되어야 할 것이다.
필자는 학기마다 학생들의 성적을 평가해야 했다. 그때마다 기준을 어떻게 설정해야 할지, 적용의 일관성을 어떻게 유지해야 할지, 평가의 엄격성을 유지하면서도 그 학생의 특수한 상황에 맞게 교육적 융통성은 어느 정도로 베풀어야 할지, 이런 문제들을 결정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낙제를 달가워하지 않는 대학 당국의 은근한 압력, 또 다른 동료 교수들과 보조를 맞추어야 한다는 분위기도 부담으로 작용했다. 대학 종합 평가에 참여하여 자체 평가보고서를 작성할 때는 최대한 객관적으로 작성해야 한다는 양심의 소리와 대학의 높은 성취도를 과시해야 한다는 요구가 각을 이루었다.
평가에 따라 자격이나 혜택이 주어지고 지원사업에 선정 여부가 결정되는데, 이 사회에서 그런 평가가 공정하게 이루어지는지는 자못 의심스럽다. 한 건축학과 교수의 증언에 의하면, 레미콘 회사에서 레미콘을 배합할 때 재료의 비율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한다. 감독기관의 평가는 사전 통보한 후에 이루어지기 때문에 형식에 그치기 십상이란다. 도로를 포장할 때는 아스팔트의 두께를 일정하게 유지해야 한다는 규정을 지켜야 하는데, 어느 지점을 검사해야 할지는 시공업체가 지정한다고 한다. 그런 행태가 관행처럼 행해진다는 것이다. 그런 관행이 그 교수가 목격한 몇 경우에 국한된 현상이라면 다행일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우선 평가에 참여하게 될 때는 기준을 공정하게 적용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나의 이해에 따라 알게 모르게 저울추가 기울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것이다. 더 나아가 기존의 기준이 정말 공정한지 검토하고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혹시 곁에 있는 약자가 힘에 밀려 공정한 평가를 받지 못하고 피해를 볼 때에는 만회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도 해야 할 것이다.
인간이 사용하는 저울은 늘 불완전하다. 저울을 사용할 때마다 우리는 내면의 유혹과 사회의 압박과 싸워야 한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내 손에 들려 있는 저울이 하나님께서 맡기신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또한 그 저울추가 공정한 저울추인지 끊임없이 살펴야 한다. 그러면서도 최종적이고 종합적인 평가는 하나님의 손에 의해서 이루어질 것을 생각하여 내가 내리는 평가의 한계를 인식해야 한다. 이러한 수고가 쌓일 때 우리 사회는 조금씩 더 공정하고 신뢰할 만한 공동체가 되어갈 것이다.
* “공평한 저울과 공평한 추와 공평한 ‘에바’(고체를 재는 단위)와 공평한 ‘힌’(액체를 재는 단위)을 사용하라 나는 너희를 인도하여 애굽 땅에서 나오게 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레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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