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필자는 학생으로서, 그리스도인으로서, 법률가와 시민으로서, 개인과 사회의 도덕과 정의에 대한 문제들을 인생의 질문으로 계속 풀어가면서 살아왔다. 1980년대 20대에는 군부독재 반대 운동에 참여하고 투옥과 제적도 경험하면서 세상의 여러 면에서 ‘비도덕적 사회’를 고치기 위한 ‘도덕적 인간’으로 살기 위해 노력한 기간이 있었다. 1990년 무렵 운동을 그만두면서 “아! 세상을 완전한 ‘도덕적 사회’로 만드는 것도 불가능하고, 그 과정에서 사람이 완전한 ‘도덕적 인간’으로 되는 것도 불가능하구나!”라는 생각으로 깊은 낙담과 절망에 빠져 있던 시간도 있었다. ‘도덕적 사회와 도덕적 인간’에 대한 꿈과 이상이 무너진 빈 공간을 통해서 기독교 신앙이 들어올 수 있었다. “사람의 힘으로 완전한 세상과 온전한 인간을 만들 수 없다면 사람이 아닌 하나님이 존재하는 것이 가능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사람이 쓴 글로 보기에는 너무나 내공이 깊은 성경의 구절들이 이 생각을 뒷받침했다. 2000년 무렵 처음 믿는 기독교 신앙의 자리는 이렇게 ‘도덕적 사회와 도덕적 인간’이 무너진 폐허 위에, “세상과 나는 간 곳 없고, 구속한 주님만 바라보는” 곳이었다. 실존적 인간과 절대적 하나님이 만나는 기쁨 속에, 도덕적 사회와 도덕적 인간의 문제는 사라지거나 뒷전으로 밀려나 있었다. 2010년경부터 기독법률가회(CLF) 활동에 참여했다. 기독법률가회에서의 토론으로 하나님 앞에 세상의 한 영역을 책임지겠다는 주체성과 함께 믿음과 세상의 관계에 대한 질문이 다시 긴밀하게 연결되기 시작했다.
2014년 4월 세월호 사건이 발생했다. 사회의 공적 기능과 사적 기능이 무너진 충격적 상황에서, 피해 가족들을 공격하는 냉혹한 발언들이 유력한 목사들 입에서 터져나왔다. 총리로 내정되었던 어떤 장로는 “일제 식민지 지배는 하나님 뜻이다”라고 말했는데 상당수 신학자들은 이 발언이 정당한 신정론이라고 옹호했다. 욕먹는 목사, 욕먹는 장로에 욕먹는 신학자들까지 나온 상황에서 필자는 더 이상 목회자나 신학자에게만 이 문제에 대한 정답을 의지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동료들과 함께 ‘욕먹는 기독교와 평신도의 고민’이라는 제목의 글로 토론을 진행했다. 2017년 명성교회 사태와 사랑의교회 사태, 최근의 전광훈 사태로, ‘욕먹는 기독교’의 현상은 더 심화되었다. 과연 우리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욕먹는 기독교’의 원인은 무엇일까?
필자가 제안한 새로운 방법론은 ‘현실적 접근법’이다 ‘욕먹는 기독교’의 원인을 주관적인 윤리나 영성의 부족보다 객관적으로 ‘기독교 신앙’이 ‘그리스도인들의 삶’과 만나는 지점에서 벌어지는 현실적인 왜곡으로 파악해야 한다. 기독교 신앙은 ‘초월적’인데, 그리스도인의 삶은 ‘사적’인 경제생활과 ‘공적’인 사회·정치 생활로 이루어져 있다. 교회와 교인들은 신앙의 ‘초월’로 모든 것이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현실은 그리스도인들의 ‘사적 욕망’과 ‘공적 무책임’이 기독교 신앙의 ‘초월적 거룩함’을 압도하며 무너뜨리고 있다. 따라서 욕먹는 기독교의 원인은 ‘그리스도인들 인생의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과 초월적 영역에 대한 혼동과 오해’이다.
예수님이 주신 이중 계명, “너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너 자신을 사랑하는 것과 같이 네 이웃을 사랑하라”라는 계명에는 두 가지가 아닌 세 가지의 사랑이 있다.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이웃 사랑의 기준이 되는 ‘자기 사랑’이다. 여기에서 ‘하나님 사랑’은 그리스도인들의 ‘초월적’인 신앙생활에, ‘이웃 사랑’은 그리스도인들의 ‘공적’ 시민 생활에, ‘자기 사랑’은 그리스도인들이 ‘사적’으로 먹고사는 경제 활동으로 나타난다. 그리스도인들은 우리 사랑의 크기가 ‘하나님 사랑 > 이웃 사랑 > 자기 사랑’의 순서인 것처럼 주장하지만, 내가 볼 때 우리 다수 그리스도인들의 사랑은 ‘자기 사랑 > 하나님 사랑 > 이웃 사랑’의 순서이다. 우리 대부분은 하나님을 사랑하기는 하지만, 우리를 지배하는 자기 사랑의 사적 욕망은, 아주 교묘하게 하나님 사랑을 자기 사랑의 수단으로 떨어뜨린다. 그래서 하나님 사랑까지 눌러버리는 우리의 ‘자기 사랑’은 ‘사적 욕망에 지배당하는 교인과 교회’를 만들어낸다. 세상을 어지럽히는 대형교회들의 만행은 이렇게 교회 안에 오염되고 농축된 신앙적 자기 사랑의 필연적 폭발이다. 라인홀드 니버는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를 얘기했는데, 우리 현실은 사적으로 ‘비도덕적 인간’과 공적으로 ‘비도덕적 사회’와 나아가 초월적으로 ‘비도덕적 교회’로 이루어져 있다. 인간의 죄와 욕망은 개인적인 비도덕뿐 아니라, 집단적인 비도덕을 만들고, 초월적인 비도덕까지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신앙의 공공성’을 회복하는 것 이상으로, 신앙에 스며드는 ‘사적’ 욕망과 자기 사랑에 대한 인정과 고민이 필요하다. 평신도이든 목회자이든 아무리 독실한 그리스도인이라 하더라도 100% 거룩하거나 정의로운 사람들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그리스도인들의 공적 무관심은 교회의 사회적 무책임으로 나타났는데, 최근 ‘그리스도인들과 교회의 집단적 자기 사랑’은 오히려 사회의 공적 질서와 사회적 정의를 공격하고 위협하는 사회적 위험으로까지 발전했다.
결국 한국교회의 ‘초월’이 ‘사’에 오염된 초월, ‘공’이 사라진 초월이 되어버렸다는 것, 이것이 오늘 ‘욕먹는 기독교’의 근본적인 원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 공, 초월 세 영역 모두에서의 회개’가 필요하다. 이것은 진정한 세 가지 사랑의 회복, 즉 진정한 ‘하나님 사랑’과 진정한 ‘이웃 사랑’과 진정한 ‘자기 사랑’을 찾는 것이다. 초월적인 측면에서는 우리의 자기 사랑을 이해해 주시는 편안한 하나님에서 우리에게 자기 부인을 요구하시는 불편한 하나님 쪽으로 움직이는 신앙적인 회개가, 공적인 측면에서는 부업을 통한 자선적 이웃 사랑에서 사회정치적 책임과 본업을 통한 공적 이웃 사랑으로 나아가는 사회적인 회개가, 사적으로는 우리의 인생과 신앙을 모두 잡아먹어 버리는 자기 사랑의 괴력을 인정하고, 우리 속에 충만한 자기 사랑의 힘과 씨름을 전개하는 현실적인 회개가 필요하다. 여기에서 사적 영역의 회개와 공적 영역의 회개는 평신도의 몫이고 평신도의 책임이다. 그래서 필자는 한국교회의 회복을 위한 평신도 신앙 운동으로서 평신도들의 신학적 사고능력을 개발하기 위한 ‘평신도 신학 과정’과 ‘세상 속 복음, 교회 밖 신앙’을 만들어 나갈 평신도협회 성격의 단체로 ‘평신도신앙실천운동’을 만들어서, ‘욕먹는 기독교’에 대한 평신도의 고민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진행하고 있다. 어디까지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할 때까지는 해보다가 죽자는 생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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