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지난 8월에 서울대학교에서 있었던 기독청년학생 연합 북콘서트에 참석하며 가졌던 생각의 일부를 나누고자 한다. ‘비도덕적 사회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기’라는 제목으로 개최된 북콘서트는 다양한 전공의 학생들이 라인홀드 니버(Reinhold Niebuhr)의 주요 저작 중 하나인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를 한 학기 동안 함께 읽은 내용을 장별로 요약해서 발제하고 각 장에 담긴 내용을 주제로 청중과 토론하는 시간으로 이어졌다. 토론 중간에 니버의 신학적 접근 방식이 지닌 이질성에 대한 비판들이 나왔고, 과연 니버의 작업을 기독교 신학적 작업으로 볼 수 있는가를 묻는 비평적 질문에까지 이르렀다.
니버의 신학 방법론과 전통적 신학 방법론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기에 이질성에 대한 문제 제기는 한편으로는 타당하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니버가 현 신학자들 사이에서 바르트나 틸리히와 더불어 20세기 서구 기독교 신학을 대표하는 주요 학자들 중 하나로 거론된다는 점에서, 그의 작업을 기독교 신학의 테두리를 벗어난 것으로 볼 수는 없음이 또한 자명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질문은 왜 니버가 굳이 기존 신학 전통과 구별되는 방법론을 가지고 신학을 전개했는가일 것이다.
올해 초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에 융합기독교학이라는 전공 분야가 신설되었고 필자가 담당 교수로 임용되었다. 학교에 부임하고 “연세 신학이 이전에 없던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라는 말을 주변에서 많이 들었다. 그러나 다른 학문과의 상호작용 없이 독자적으로 발전해왔다고 흔히 오해되는 기독교 신학은 사실 지난 이천 년 역사 동안 태생부터 ‘융합적’이었다는 점에서 융합기독교학의 신설이 기독교 역사 속에 존재한 적이 없는 새로운 시도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선교의 결과로 교회가 팔레스타인 지역을 넘어 유럽으로까지 확산되면서 기독교의 가르침은 로마를 둘러싼 광범위한 지역에서 통용되었던 그리스 철학과 융합되었고, 2세기에 이르러서는 그리스 철학의 핵심 개념인 ‘로고스’가 기독교의 가르침을 설명하는 데 사용되었다. 3세기 교부였던 오리게네스의 신학화 작업이 당대 사고의 근간이 되었던 플라톤/신플라톤 철학과의 융합을 통해 이루어졌음이 자명하고, 5세기에 아우구스티누스에 의해 이루어진 기독교 신학의 체계화 역시 계속해서 이어진 시대 정신과의 끊임없는 융합적 작업의 결과로 평가할 수 있다.
아우구스티누스에 의해 체계화된 기독교 신학은 수백 년을 아우르는 중세 시대 전반에 걸쳐 서구 기독교 전통으로 자리 잡았는데, 13세기 들어 아퀴나스에 의해 아우구스티누스 신학 전통과 확연히 구별되는 새로운 신학 사조가 형성되었다. 아퀴나스 신학의 이질성은 당대의 신학자들로부터 다양한 종류의 건설적 비판을 받았을 것이고 그 기저에는 아퀴나스의 작업을 신학적 작업으로 볼 수 있겠냐는 비평적 질문이 자리했을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 신학이 ‘구원사’라는 견고하게 형성된 고유한 역사적 틀을 가지고 기독교 교리들을 체계화한 데 반해서, 아퀴나스는 전통적인 역사적 틀에서 벗어나 기존 교리들을 새로운 방식으로 기술했기 때문이다.
수백 년간 이어져 내려온 기존의 신학 전통과 확연히 구별됨에도 아퀴나스의 신학적 작업이 호응을 얻어 오늘날의 기독교에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새로운 관점에서 이루어진 아퀴나스의 신학적 작업이 당대의 사조였던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에 기반해, 그것과 어우러지는 융합적 방식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아우구스티누스 신학이 기반했던 플라톤 철학이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이 13세기 중세 사조의 근간을 이루고 있었기에, 이에 기반한 새로운 틀 속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체계화된 신학이 당대의 사람들에게 보다 합리적이고 설득력 있게 기독교의 가르침을 전달할 수 있었던 것이다.
비슷한 이유로 니버의 새로운 시도가 기독교 신학의 발전에 획기적으로 기여했다고 할 수 있다. 19세기와 20세기에 걸쳐 기독교 전통은 근대 정신에 의해 다양한 도전에 직면했는데, 그중 하나는 역사적 타락을 전제한 원죄 교리에 가해진 비판이었다. 전통적 원죄 교리가 인간의 본질적 선함과 인간의 자유와 자율성에 대한 신념을 주요한 가치로 여기게 만든 근대 정신과 상충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니버가 활동했던 시기는 다윈의 진화 이론이 기독교 신학 전통이 고수해온 역사관에 심각한 도전을 가져왔다는 점을 인식하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했다. 니버는 이러한 시대 정신을 아우르는 창조적인 방식으로 신학을 전개함으로써 20세기를 대표하는 신학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을 이해할 때 비로소 전통적으로 기독교 신학이 차용해온 역사적 틀에 의존하지 않는 니버 신학의 이질성의 기원을 찾을 수 있다. 니버는 대표적으로 아우구스티누스 신학 전통에서 규명한 ‘불필요하나 불가피한’ 죄의 본질적 요소를 역사적 틀에 의존하지 않고도 설명하는 새로운 방식을 제안함으로써, 시대 정신의 도전을 직면하면서도 기독교 교리의 핵심 요소들이 훼손되지 않도록 했다. 니버가 20세기 기독교 신학에 큰 반향을 일으킨 신학자로 거론되는 것은 그가 기독교의 가르침을 20세기의 시대 정신과 어우러지게 하는 새로운 길을 제공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전통적 기독교 세계관으로 바라봤을 때 필연적으로 발견되는 니버의 이질성의 공헌은 그것이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20세기에 만연했던 시대 정신에 직면하여 이를 극복하기 위해 창조적 방식으로 기독교 신학을 재구성한 결과라는 데 있다. 신학자의 책무가 신앙에 본질적인 요소를 분별하고 그것을 시대의 눈으로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체계화하는 것이라면, 니버의 독특한 이질적 작업은 비판적으로 평가해야 할 요소들을 지님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신학이 나아가야 할 하나의 중요한 방향성을 제시해 준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용약관 | 개인정보 취급방침 | 공익위반제보(국민권익위)| 저작권 정보 | 이메일 주소 무단수집 거부 | 관리자 로그인
© 2009-2026 (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고유번호 201-82-31233]
서울시 영등포구 도림로 139길 8-1, 3층 (문래동2가)
(07290)
Tel. 02-754-8004
Fax. 0303-0272-4967
Email. info@worldview.or.kr
기독교학문연구회
Tel. 02-3272-4967
Email. gihakyun@daum.net (학회),
faithscholar@naver.com (신앙과 학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