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공적 신앙이란 사회와 공동체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고 실천하는 신앙을 의미한다. 즉, 신앙을 사적 차원에만 머물지 않고 정의와 평화, 공공선을 추구하는 삶으로 확장하는 것이다. 특별히 이는 사회적 약자와 소외계층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신앙과 삶을 뜻한다. 문제는 이것이 청년 세대에게 교회의 역할로 인식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 시대 청년 세대가 공적 신앙을 실천하지 못하고 사적 신앙에 머무는 까닭은 부모 세대로부터 광장에서 신앙을 실천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이 부모 세대의 잘못은 아니다. 부모 세대가 가르치지 않았다기보다는 청년 세대가 배움을 얻지 못했다. 애당초 청년 세대는 부모 세대와는 다른 새로운 도시 광장 위에 서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의 금연과 금주, 식사 기도 역시 더는 구별된 삶의 표지가 되지 못한다. 이러한 세상에서 공적 신앙을 실천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슨 의미일까? 그것이 광장에서 태극기를 흔드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한때 한국교회가 사회적 약자와 소외계층을 돌보고 섬기던 시대가 있었다. 구한말 조선에서 활동했던 선교사들은 단순히 교회를 세우고 복음을 전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이들은 학교를 세우고, 병자를 치료하고, 사회적 약자를 돌보았다. 선교사들은 고아, 빈민, 환자, 여성, 어린이 등 당시 사회에서 천대받던 약자들과 소외계층을 구제하고, 교육하고, 치료했다. 이들에게 복음 전파는 인간답게 살 권리, 교육받을 권리, 치료받을 권리와 같은 공적 가치와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었다. 이들은 비도덕적 사회에서 공적 신앙을 실천하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았다. 이러한 공적 신앙과 삶의 양태는 해방과 한국전쟁, 전후 재건이라는 격변의 시기까지 이어졌다. 전후 한국은 절대적 빈곤 상태였고, 정부 재정만으로는 교육기관과 의료기관을 설립·운영할 수 없었다. 이에 미국 각 교단의 원조로 설립·운영된 기독교 사학들이 문맹 퇴치, 중·고등교육 확대, 여성 교육 등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기독교 병원들은 난민과 전쟁 피해자들을 구호하고, 가난하고 소외된 계층을 무상으로 치료했다. 마찬가지로 한국전쟁 이후 국가의 복지제도가 사실상 전무했던 1950~70년대, 아동·노인·장애인 복지 기관의 대다수는 교회가 세우고 운영했다. 즉 국가가 감당하지 못한 복지의 공백을 교회가 실질적으로 떠맡았던 셈이다.
그런데 한국 경제가 급속히 성장하면서 교회의 공적 신앙도 성장통을 겪게 된다. 사립학교가 급속히 팽창하면서 대형 사학은 여러 이권을 놓고 온갖 비리로 부패하게 된다. 이후 사학비리를 막기 위해 정부가 사학법을 제정해서 사학을 감독하기 시작했고, 이 과정에서 사학의 자율성과 기독교 교육이 크게 약화되었다. 의료기관 또한 마찬가지다. 세브란스 병원의 경우 채플이나 원목실 같은 기독교 정체성이 일부 남아 있지만, 실제 병원 현장은 기독교 신앙이 아니라 의학적 전문성과 경영 효율성이 지배하고 있다. 또한, 대형 병원의 설립 주체를 보면, 종교재단(세브란스, 서울성모) 외에도 국가(서울대)와 기업(아산, 삼성서울)이 있으며, 특히 국가 주도의 국민건강보험 체제가 확립되면서 진료나 병원 운영에서 종교적 재량이 개입할 여지가 없어졌다. 사회복지 영역도 별반 다르지 않다. 1990년대 이후 한국이 본격적으로 복지국가 체제를 구축하면서 복지 영역에서 교회의 역할이 점차 축소되고 있다. 오늘날에도 다수의 지역아동센터, 노인요양시설, 장애인 복지관 등이 기독교 재단 소속으로 운영되고 있지만, 대다수가 국가의 지원과 감독 아래 위탁 운영 형태로 이뤄지고 있다.
교육, 의료, 복지 등 과거 교회가 담당했던 여러 공적 영역들이 오늘날에는 복지국가의 책임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 결과 교회는 광장에서 점점 밀려나고 있으며, 사회적 약자와 소외계층을 돌보고 섬기는 일이 더는 교회의 역할로 인식되지 않고 있다. 그것은 국가의 책임이지 교회의 책임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부르셨다. 그리스도인은 공동체 전체의 선을 위해 봉사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다만, 교육, 의료, 복지와 같은 과거의 유산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그것은 여전히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이지만, 우리는 우리 시대에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섬겨야 한다. 우리는 새로운 도시 광장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복지국가가 사회적 약자와 소외된 계층을 적극적으로 돌보고 보살피고 있다면, 우리는 구한말 선교사처럼 지극히 작은 자를 찾아 저개발국으로 나갈 수 있다. 세계 곳곳에서는 여전히 교육, 의료, 복지 등의 영역에서 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하고, 한국교회는 이러한 선교 현장에서 기존의 공적 신앙을 효과적으로 실천할 수 있다.
한국 사회에서 공적 신앙을 실천하는 일은 조금 더 복잡하고 어려운 일처럼 느껴진다. 복지국가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새로운 영역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복지국가가 하나님 나라는 아니다. 그렇기에 여전히 교회의 공적 역할이 남아 있다. 교회는 국가가 신경도 쓰지 않거나, 지원할 자원이나 정치적 의지가 없는 선한 일들을 찾아 진지하게 착수해야 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는 말자. 공적 신앙이 사회와 공동체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고 실천하는 신앙으로, 정의와 평화와 공공선을 추구하는 삶이라면, 자신의 자리에서 사회와 공동체를 위해, 정의와 평화와 공공선을 위해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육체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위한 게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한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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