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은 구원에 대한 확신과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실천과 그로부터 비롯된 주변의 열매로 완성된다. 특히 후자를 위해서는 평생에 걸쳐 씨름하며 살아가야 하는데,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기본적으로 선한 일에 대한 노력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각자의 삶을 살아가면 된다는 개인주의와 내가 속한 집단의 공적과 위치를 높이고자 하는 집단 이기주의적 메시지는 우리로 하여금 사랑하는 삶에 대한 의심과 좌절에 빠지게 한다. 이번 시론에서는 끝까지 그리스도인으로 남기 위해 투쟁하며 살아가는 한 청년으로서 세상의 배척과 자기 의심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나누고자 한다.
나는 다소 늦은 나이에 석사과정에 입학했다. 학부 때 세 개의 전공을 공부하고도 나아갈 길을 알지 못해 헤매는 시간이 길었다. 지도 없이 광야를 걷는 나그네처럼 살던 내가 비교적 오래 머무른 일은 프리랜서 강사였다. 의도하지는 않았으나 사교육 업계 내에서도 특수한 위치에 있는 학원과 계약을 맺었고, 엄청난 월세를 자랑하는 강남 한복판으로 출퇴근하며 대한민국에서 가장 비싼 아파트로 출강을 다녔다. 처음에는 모든 것을 다 가진 것처럼 보이는 아이들을 위해 일한다는 사실이 마음 한 구석을 불편하게 했지만, 하나님의 자녀로서 지금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온당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당시 누가복음 성경 공부를 하며, 예수님께서 당신의 제자와 무리들과 함께 거하고 한 영혼의 성장을 위해 마지막까지 애쓰시는 모습이 가슴 깊이 와닿았다. 그리고 나 역시 맡은 학생의 지적 성장뿐 아니라 몸과 마음의 건강까지 신경쓰며 최선을 다해 사랑하고 가르치고자 했다. 처음에는 그런 관심을 낯설어하며 이상한 시선으로 보다가도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마음을 열고 변화하는 학생들을 보는 것은 큰 기쁨이었다. 그러나 누군가의 눈에 나의 행동은 과한 오지랖이자 선을 넘는 일이었으며,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수고였다. 반대로 이것을 이용하여 나에게 자녀의 모든 것을 맡기려 하는 등 과도한 업무가 주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 선한 일을 위해 끝까지 애써본 적이 많지 않던 나로서는 매우 당황스러운 반응이었다. 낮은 자리에서 섬기면 모두가 좋아해 주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불편함 없이 받아들일 줄 알았으나 크고 작은 거부와 저항, 비판을 마주하면서 근본적인 혼란이 찾아왔다.
외부의 목소리보다 더 시험이 되었던 것은 깊은 내면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자기비판과 자기 의심의 목소리였다. 내가 이렇게 사는 것이 오히려 주님의 영광을 해치는 일은 아닌지, 결국 다 자기합리화이고 자기 위선적 행동은 아닌지에 대한 의심이 시작되었다. 동시에 사랑하며 사는 게 육적으로나 심적으로나 몹시 지치기 때문에 모든 것을 관두고 싶은 날들이 심심찮게 찾아오고는 했다. 무엇보다 이러한 나의 모습을 마주하는 것이 부끄럽고 괴로워서 정작 주님 앞에 정직하게 나아가지 못하는 날들이 많아졌다. 결국 나의 인간적 힘을 끌어모아 아등바등 버티기 시작했고, 주변의 반응에 일희일비하는 삶으로 빠져들었다. 그런 나의 모습을 눈치채고 붙들어준 이들이 있다면 내가 속한 공동체의 멤버들이었다. 그들의 적극적인 개입과 중보로 조금씩 다시 주님 앞에 나아갈 용기를 얻었고, 나의 부족함과 깨진 모습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누가복음을 통해 우리와 똑같이 괴로워하고, 실망하며, 때론 화를 내고, 눈물을 흘리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며 그분이 나의 아픔을 알고 있을 뿐 아니라 경험하셨다는 사실이 큰 위로가 되었다. 그전까지 예쁘게 정제된 상태로 드리려 했던 기도 또한 점차 솔직하고 거칠어졌으며 그 분 앞에 납작 엎드리는 법을 배워갔다.
환경이 바뀐 지금도 예외는 아니다.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새롭게 사랑을 시작하는 일이 예상은 했지만 그보다 훨씬 어렵다. 그러나 이전과 달라진 것이 있는데, 내 힘으로 사랑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가 누군가를 끝까지 사랑할 수 있다면 그것은 오로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사랑 때문이라는 것을, 이것이 혼자만의 싸움이 아니라 이를 나누고 중보할 동역자들이 있다는 사실을 안다. 무엇보다 내가 구할 때마다 얼마든지 더하여주시는 그분의 사랑을 점차 더 깊이 신뢰하는 중이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 6:9).
선을 행한다고 해서 언제나 환영받는 것은 아니다. 거절과 오해, 자기 불신 속에 우리의 심령이 낡아지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비도덕적 사회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이러한 어려움을 제거하는 삶이 아니라, 이 모든 어려움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사랑을 붙들고 계속해서 이 삶을 선택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선한 일을 행하는 가운데 찾아오는 모든 어려움을 넉넉히 이기고도 남는 하나님의 사랑이 이 여정을 함께 걷는 모든 이들에게 주어지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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