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얼마 전, 한 수업의 O.T. 시간에서 최근 머릿속을 가장 많이 차지하는 질문을 적어보라는 교수님의 말씀에 나는 “우리는 왜 이럴까?”라고 적었다. 그날은 부모님과도, 친구와도 사소한 이유로 다투었던 날이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것처럼 내가 좀 더 사랑함으로 오래 참고, 온유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로 나아갔다면, 일어나지 않았거나 최소한 더 심해지지는 않았을 다툼이었다. 예수님을 알고 만나고도 오늘도 실패했다는 생각은 늘 나를 편하지 못하게 한다. 나는 왜 이럴까, 그리고 우리는 왜 이럴까? 왜 교회는 잘 다니고 예수님을 믿음에도 죄에서 벗어날 수 없고, 교회 밖에서는 사랑을 깡그리 잊고 이중적으로 변할까? 이 글에서는 나의 흔들리고 연약한 영성으로나마 사회 속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두 가지 고찰을 적어보려고 한다.
한국의 기독교 인구, 그중에서도 개신교 인구는 총 약 천만 명이다. 이는 대한민국 전체 인구의 약 1/5가량에 해당한다. 만약 이 사람들이 모두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대로 사회에서 사랑을 실천한다면, 이 세상과 사회에서도 그 사랑의 흔적이 드러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안타깝게도 반대인 경우가 더 많다. 당장 그리스도인으로 알려진 수많은 정치인들을 봐도, 교회에서는 장로나 권사, 집사 등 중직을 맡고 신앙생활을 신실하게 하고 계실 것이다. 그러나 주일이 지나고 다시 정치판에서는 서로를 헐뜯고 비난하기에 바쁘다. 비단 정치인들뿐만이 아니다. 나 또한 이웃을 사랑하기로 결심하면서, 정작 내 주변의 거동이 불편하신 어르신처럼 당장 도움이 필요한 손길들은 못 본 척하고 넘어가거나, 용기를 내지 못할 때가 많다. 굳이 사회로 나갈 필요도 없이 교회 내와 그 구성원들에게도 그렇다. 교회는 열심히 다니고, 교회 내에서 리더도 하는 친구들이 캠퍼스를 비롯한 삶의 자리에서는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드러내기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다. 또 한국교회의 상황을 둘러봤을 때, 교회와 교회 간, 또는 성도 간 견제와 다툼은 얼마나 심한가?
지난 봄 학기 중에 서울대학교 기독학생북클럽 정기모임에서 다루게 된 책인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니버)의 주제 또한 이러한 문제에 관해 일부 설명하고 있다. 도덕적 개인이 모여 구성된 사회이더라도, 그 사회는 결국 비도덕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서 저자인 라인홀드 니버는 이렇게 설명한다. 개인마다 가지고 있는 이성, 그리고 종교의 기본적 교리인 사랑이 개인을 도덕적으로 만드는 데 도움을 줄 수는 있으나, 이것이 집단에게는 적용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유로 한 개인이 속한 집단 내에서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추구하고자 하는 ‘집단적 이기심’을 꼽는다. 이 집단적 이기심은 개인적인 욕구와 도덕보다 더 강한 성격을 띠기 때문에, 때로는 타 집단에 대한 극도로 이기적이고 배타적인 태도와 도덕의 탈을 쓴 이기심으로 변질되기도 한다.
현재 대한민국 사회에서 개신교에 대한 인식은 꽤 좋지 않은 상황이다. 특히나 서울대학교 캠퍼스 내에서는 더욱 그렇다. 어머니에게서 그 시절 대학 내 노방전도, 성탄절 전도 행사 등 이야기를 듣다 보면 현재의 상황과 비교되어 더욱 씁쓸해지고는 한다. 최근 들어 기독교에 대한 이미지가 이토록 급격히 나빠진 이유는 무엇일까? 코로나19 대유행 시절 종교 집회와 전도 활동으로 인한 대확산, 특정 정당에 대한 교회 차원에서의 무조건적인 지지 등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주변 동기들 또는 커뮤니티의 반응을 살펴보면 캠퍼스 내 끈질긴 노방전도, 동성애와 퀴어에 대한 반대의견, 특정 집단들의 정치색 표시에 불만을 표하기도 한다. 분명한 것은, 세상의 비난 가운데 우리가 받아들여야 할 것과 그렇지 않은 비난이 공존한다는 사실이다.
때로 우리는 세상에서 받는 비난을 신앙인으로서 감수해야 하는 것(마 5:11-12, 요 15:18-19)처럼 착각하기도 한다. 물론 그리스도인으로서 세상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비난과 고난들이 있다. 그러나 ‘세상의 고난’과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궁극적으로 우리가 사회로부터 고립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신다. 주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시며 우리에게 주신 지상명령은 복음이라는 기쁜 소식을 세상에 땅끝까지 전파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무엇보다 세상에 사랑을 먼저 실천하는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사회를 보는 시선은 ‘우리’와 ‘그들’로 구분될 수 없다. 예수님을 알든, 아직 알지 못하든 간에 우리는 모두 같은 하나님의 어린양이기 때문이다. 비난하고, 정죄하고, 헐뜯기에 앞서 한발 물러나 기도로 먼저 주님께 간구해야 할 때이다. 이 세상과 우리의 육신은 죄에 속해 있지만, 우리의 마음과 영은 주님께 속한 것이니 정결하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할 때이다.
지금도 비그리스도인으로 이루어진 사람들 사이에서 내가 그리스도인임을 당당하게 드러내지 못하는 것은 나에게 있어서 계속되는 영적 싸움이다. 그 이유를 처음에는 사회에서 교회를 향한 비난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나 또한 사회에서 그들을 규정하는 것처럼 ‘광신도’라고 취급받거나, 다른 모든 것보다 종교가 중요한 사람처럼 보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번은 이 문제로 고민하다가 교회를 떠나고 하나님과 완전히 단절된 시기를 살았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 없이는 설명할 수 없는 우리 삶의 목적을 다시 깨닫고, 이를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나서도 또 다른 새로운 문제에 봉착했다. 내가 이 사회에 그리스도인으로 당당하게 나갈 수 있을까? 나는 세상의 기준에 ‘가치 있는’ 존재로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본을 보이고 있는가? 내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사실을 밝히기 전, 사회에서 비난할 만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모습이, 사실 나의 모습과 유사하지는 않은지에 대한 두려움이 앞선다. 나는 여전히 예민하고, 고집이 세고, 때로는 교만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구조적으로 죄를 짓기가 너무 쉽다. 우리의 육신은 연약하고 세상으로부터는 끊임없이 유혹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인간은 알면서도 하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많은가. 배운 진리대로 그대로 살 수만 있다면 세상의 죄악은 훨씬 더 줄었을 것이다. 그러나 내 안에 성령님이 계심을 기억하며, 사람의 모습이 올라올 때마다 예수님을 한 번 더 떠올릴 수 있다면 그것이 예수님을 닮아가는 과정이라고 믿는다. 부족함으로 가득한 나의 모습일지라도, 내 안에 계시는 성령님의 은혜를 입고 주변인들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조금이라도 드러내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오늘도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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