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기관지
신실하시며, 사랑스러우신 하나님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라인홀드 니버, 문예출판사)

니버의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를 가지고 지난 여름방학 전국의 청년 학생들이 서울대에서 함께 모여 나눈 ‘제11회 기독청년학생 연합 북콘서트’를 성황리에 마쳤다. 나는 발제자로 처음 참여했고, 신앙이 자리잡은 지도 얼마 되지 않아 걱정이 많았는데 기우였고, 자신을 내려놓고 주께 맡기니 은혜가 컸다. 게다가 북콘서트 토론 시간에 미처 답하지 못한 질문에 아쉬워하던 차에, 이렇게 서평을 쓸 기회도 생겼다. 그때 못다 한 말을 꺼낼 자리를 마련해 주시다니 역시 하나님은 신실하시다. 개인적 감상은 여기까지 하고. 북콘서트에서 발제를 섬겼던 당사자로서 니버 책의 내용을 잠깐 함께 나누고자 한다.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 사회>는 10개의 장으로 이루어진 기독교 사회윤리 논쟁서다. 1~3장은 개인의 도덕적 자원인 양심, 이성, 종교를 탐색하고, 4~6장은 국가와 계급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해부하며, 7~10장은 정의는 무엇으로 가능한가를 묻는다. 신학적 접근보다는 대공황기 미국 사회를 향한 기독교적 해법 모색에 가깝다. 메시지는 명료하고 겨냥한 상대도 분명하다. 교육과 계몽이 사회의 불의를 해소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은 당대의 자유주의 신학과 진보적 교육론이었다. 니버는 공업도시 디트로이트에서 노동자 목회를 하며 이 낙관주의의 무력함을 목격했고, 이 책은 그 산물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특히 1~6장을 중심으로 나누어 보려고 한다.
내가 보기에 니버의 출발점은 관찰이다. 개인은 타인의 이익을 고려할 줄 알지만, 개인들이 모인 집단은 그렇지 않다. 1장은 개인 역시 완전한 도덕적 존재가 아님을 직시한다. 이어지는 두 장은 자유주의의 두 해법을 차례로 무너트리고 있다. 2장은 이성의 양면성을 소개한다. 이성은 개인의 도덕적 지평을 넓히지만, 동시에 자기 이익을 정당화하는 변호자이기도 하다. 가령 자기만족과 인정을 위한 이타적 기부에는 그 양면성이 모두 드러나 있다. 또한 교육으로 이기심을 극복할 수 있다는 기대는 이 이중성을 보지 못한 것으로 정리된다.
종교도 마찬가지다. 절대자 앞에서 인간은 자신을 낮추고, 종교적 양심과 통찰력으로 이기성을 극복하기도 한다. 정의와 사랑의 관점에서 종교는 이상적 사회를 상정한다. 물론 한계도 분명하다. 자기 국가만 이성적이고, 특별한 사명을 지녔다고 여길 가능성이 생긴다. 실제로 1, 2차 세계대전이 그렇게 발발했다. 집단 이기주의로 변질될 위험을 니버는 감추지 않는다. 니버는 집단의 이기성에 대해서, 국가 이기주의가 개인의 이기심이 아니라 오히려 헌신에서 나온다고 본다. 애국심은 개인의 이타심을 국가라는 그릇에 모아 담고, 국가는 국경 바깥에서 개인의 이타심을 아무 제약 없이 소비한다. 우리는 여기서 국가가 평화와 인도주의를 명분으로 경제적 이익과 군사적 영향력을 계산하진 않았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즉, 니버는 자기가 속해 있는 집단이 무조건적으로 도덕적일 수 있다는 믿음을 경계해야 함을 주장한다.
니버는 5장, 6장에서 특권계급과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입장과 순환을 다룬다. 특권계급은 자기 이익을 보편적 이익의 언어로 번역하는 데 능하다고 본다. 시혜를 베푸는 손은 구조를 건드리지 않으면서 도덕적 우위를 확보하려 한다. 이 위선은 의식적인 기만이라기보다 자기기만에 가깝다. 특권계급은 자신이 누리는 것이 정당하다고 진심으로 믿기 쉬우며, 그 논리는 언제든 마련되어 있다. 반면 프롤레타리아 계급은 이를 꿰뚫어 볼 수 있다. 니버는 이것이 이해관계에서 벗어나 있어서가 아니라 반대편 이해관계에 서 있기에 상대의 눈가림용 포장지가 눈에 들어온다는 것이다. 니버는 이러한 냉소적 입장이 특권계급의 위선보다 정직하다고 평가한다. 다만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피억압 계급도 예외 없이 자기 대의를 절대화하는 순간 같은 함정에 빠지고, 만약 권력을 잡게 되면 특권계급과 같은 기득권을 유지하려 한다. 따라서 어느 집단에도 도덕적 면죄부를 주지 않는 니버의 이 균형감각과 통찰이 이 책을 단순한 계급투쟁을 다룬 책과 갈라지게 한다.
우리는 역사적 고전 문헌을 읽을 때 저자의 환경, 성향 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떤 사실을 강조하고 어떤 사건이 있고, 어떻게 해석하고 평하는지가 저자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이 책도 복어를 요리하듯 조심스럽게 다룰 필요가 있다. 시대적 배경과 사상을 알아두는, 즉 독을 제거하는 과정을 거쳐야 더 잘 소화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북콘서트의 질의응답 시간에 내가 받은 질문이 있다. “개인과 사회에 니버가 제시하는 답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그때는 얼버무려 대답한 것이 못내 아쉬웠는데, 이제 총평의 형식을 빌려 답해 본다.
나는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 사회>가 정답을 제시하기보다, 주어진 세상을 진단하는 책이라고 본다. 이러한 책은 으레 결말이 열려 있다. 그 결말의 빈자리를 독자들이 채울 수 있다는 뜻이다. 독자는 책을 읽은 후 다양한 길을 선택할 수 있다. 이 책을 통해 요즘 자주 거론되는 이른바 ‘메타인지’를 더 잘 붙드는 것도 각자의 몫이다. 누군가는 나처럼 발제, 서평을 거치며 떠오른 생각들을 정리하다 주어진 달란트를 들고 살아가는 개인적 삶의 자리를 보게 될 것이다. 니버는 이 책을 저술할 때, 이 책이 백 년 후 한국의 청년들에게 이렇게 유익한 토론과 화합의 자리를 열어 줄 것이라 상상이나 했을까. 그저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와 신실하심에 미소가 지어진다. 니버는 본래 책 제목을 ‘비도덕적 인간과 더 비도덕적인 사회’로 짓고자 했다고 들었다. 이 제목이 더 잘 어울린다는 말은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나는 머리로는 그렇게 읽되, 가슴으로는 ‘도덕적이고 싶은 인간과 더 도덕적이고 싶은 사회’를 소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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